[나의 경영일기]박병재 현대자동차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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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여름휴가가 한창이던 지난 7, 8월달,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 프로그램의 하나인 설악 대청봉 등반에 참가한 나는 해발 1천7백여의 정상을 향해 가쁜 숨을 내쉬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새벽 5시30분에 한계령을 출발할 때만 해도 자신만만했었는데, 웬걸 한여름 햇살이 울창한 나뭇잎 틈새를 파고 들어 내 머리 위에 잔뜩 드리우기 시작하자 나는 단박 비지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 쉬기 시작하였다.

신입사원의 연수프로그램에 대청봉 등정을 포함시킨 것이 벌써 20년이 넘는다.

이 행사는 신입사원 전원 참가를 원칙으로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임원들까지도 예외가 없다.

지난 해까지 칠순의 자동차명예회장도 참여를 했을 정도이니, 누군들 요령을 피울 수 있을 것인가.

작년까지만 해도 내게 있어서 이 산행은 그럭저럭 견딜 만한 연례행사중 하나로 여겨졌었다.

나는 해마다 여름이 돌아오기 몇달 전부터 아침마다 가벼운 맨손체조와 조깅으로 몸을 푸는가하면, 행여 여유가 생긴 주말이면 가까운 산으로 산행을 나서는 등 설악을 향한 트레이닝을 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없이 바빴던 올해는 아예 그같은 가벼운 트레이닝조차 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 결과 중도 포기를 해버릴까 하는 나약한 생각마저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그저 시선을 발 앞에만 둔 채 오르고 오르기를 여섯 시간, 예년에 없던 악전고투 끝에 마침내 대청봉은 지난 해와는, 또 그 지난 해와는 사뭇 다른 감회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신입사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으며 다시 산을 내려 오는 길, 나는 기업을 경영하는 일도 어쩌면 산을 오르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험한 산행에 앞서 맨손체조와 조깅으로 몸을 다지듯 평소 재무구조나 기타 경영관리 등 기업체질을 단련하여온 기업은 정상을 향하는 발걸음이 그만큼 가벼울 것이요, 그렇지 못한 기업은 비지땀만 흘리다가 중도에 주저앉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열한 시간이 넘는 왕복 산행을 끝내고 난 후에는 신입사원들과의 격의없는 대화의 시간, 장기자랑, 각종 게임 등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같은 시간 동안 그들이 보여준 팀웍과 목표의식의 창출은, 바로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대청봉 그 아득한 정상에 오르고 난 뒤의 성취감을 터득한 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설악에 오르고 또 내려온 그들은, 앞으로 그들 앞에 펼쳐질 더 높고 험한 새로운 정상에 오를 트레이닝을 하였던 것이다.

나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다시 대청봉에 오를 것이다.

물론 틈틈히 맨손체조와 가벼운 산행으로 체력을 다져 놓는 일도 잊지 않을 터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 회사 모든 가족들과 함께 올해도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우리 앞에 닥칠 험준한 산에 오를 것이다.

물론 평소에 기업의 체질을 강화하는 부단한 트레이닝을 계속하면서….

<박병재 현대자동차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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