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모호한 단체장 보궐선거 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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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조순 (趙淳) 서울시장이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이인제 (李仁濟) 경기지사가 출마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이들 광역단체장의 보궐선거 실시여부가 논란거리로 부각될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대선과 연계한 이해득실을 따져 여야간에 상반된 견해가 표출되고 있다.

여당은 보선불필요론을 내세우는 반면 야당은 정부가 임명한 여권성향의 직무대행체제로 대선을 치를 경우 자신들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며 보선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단체장을 뽑은 주민들로서는 비록 일시적 문제라고는 하더라도 지방자치의 본질이 정치권의 입김에 의해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같은 사태는 현행 공직선거및 선거부정방지법에 잔여임기가 1년 미만일 경우 보궐선거를 실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종전의 지방자치법에는 잔여임기가 1년 미만일 때는 보궐선거를 실시하지 않는다고 돼 있었으나 94년 통합선거법을 만들면서 모호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통합선거법은 보궐선거 실시여부의 결정을 직무대행자가 하도록 하는 허점까지 안고 있다.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단체장의 선거를 실시해야 하느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문제다.

비용과 행정력의 낭비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고, 지방자치를 실시하는한 어떤 이유로도 그것을 중단시켜서는 안된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같은 논란은 관련법의 제정단계에서 마무리돼야지 시행과정에까지 연장돼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린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그렇다.

미국은 아예 선출직 부지사를 두어 주지사 유고시 승계토록 해 논란을 방지하고 있다.

또 지방자치를 실시하는 대다수의 선진국들은 단체장의 자리가 비면 보궐선거가 아니라 새로 선출해 임기를 시작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관련규정의 정비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특히 단체장은 다수로 구성된 의회와 달리 유고시 자치행정의 단절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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