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북한외교관들이 본 장대사 망명 "북한 엘리트층 좌절감 증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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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 엘리트층의 좌절감이 커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겁니다. "

북한외교관 출신으로 서울에 온 고영환 (高英煥.44.전 콩고주재대사관 1등참사관).현성일 (玄成日.38.전 잠비아주재대사관 3등서기관) 씨는 25일 덕수궁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장승길 이집트주재 북한대사의 망명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91년5월 귀순한 高씨는 "80년대까지만 해도 가족이나 북한체제에 대한 발언으로 문제가 생기면 본국에 들어가 정당하게 평가받겠다는 의식이 외교관들 사이에 있었다" 고 말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평양으로부터 외화지원이 끊기면서, 자력갱생을 하지 않는 해외공관이 폐쇄되면서 그런 분위기에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장대사의 망명은 북한이 경제난으로 인해 정상적 외교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엘리트의식을 가진 외교관들마저 자기네 체제에 대한 회의감에 빠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이라고 이들은 설명했다.

더구나 북한의 1급공관이 있는 이집트의 주재대사 잠적은 북한외교관들에게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96년1월 망명한 玄씨는 "이집트는 시리아와 함께 아랍세계에서 북한의 거점국가로 북한에서는 차관급 이상을 대사로 내보내는 비중 있는 나라" 라면서 "장대사가 망명한 것은 황장엽 (黃長燁) 씨 망명등에서 보듯 북한고위층이 북한 내부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 라고 단정했다.

高씨에 따르면 장대사는 평양외국어대 아랍어과 재학중 외교부의 '양성통역' 으로 이집트에 나간 뒤 76년 보조지도원으로 외교부에 들어왔다고 한다.

장대사는 외교관 초년병시절에는 유명한 인민배우 최해옥의 남편으로 더 알려졌다고 한다.

그의 성품에 대해 高씨는 "내가 아프리카를 담당하는 외교부 6국에 근무할 때 5국에 있던 장대사는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업무추진력이 뛰어났으며 아랫사람들에게서도 평판이 좋았다" 고 전했다.

장대사는 김정일 생일 (2월16일) 때 김영남부장.강석주부부장등과 함께 외교부내에서 김정일의 선물을 받는 4인의 핵심인사중 1인으로 그만큼 신뢰를 받았다는 것. 때문에 "황장엽 사건에 버금가는 충격을 김정일에게 주었을 것" 이라고 高씨는 추측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장대사가 스커드미사일의 중동판매등 북한의 고급정보를 상당히 확보하고 있을 것이라는데 입을 모았다.

高씨는 "북한외교부는 국내 정치상황과 외교전략을 직급에 따라 알려주고 있어 차관급에 해당하는 장대사는 4자회담과 주변4강에 대한 북한의 외교정책까지 상당 부분 파악하고 있을 것" 이라고 밝혔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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