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강남시대 100일 … CEO는 사무실에 없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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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4일 오전 이윤우 부회장과 최지성 사장 등 삼성전자 사장단 사무실이 있는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C동 39층.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상주하는 비서도 없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11명의 삼성전자 사장급 중 서초동 본사에 상주하는 사장은 단 두 명에 불과하다. 감사를 맡고 있는 윤주화 사장, 신사업을 담당하는 임형규 사장을 제외하면 최고위층은 모두 수원 사업장 등 현장에서 업무를 처리한다.

삼성이 강북(서울 태평로)에서 강남(서초동 사옥)으로 옮긴 지 25일로 100일을 맞았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100일이 10년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김남용 홍보팀 부장은 “대부분의 사장들은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서울에서 일이 있는 경우에만 본사로 출근한다”고 설명했다. 1월 사장단 인사 이전만 해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사장급 상당수가 본사 사무실에서 근무했지만 지금은 모두 현장에 있다. 삼성전자가 이같이 현장을 강조한 이유는 뭘까. 새 사옥 입주 후 처음 받은 ‘성적표’ 때문이다.

서울 태평로에 모여 있던 삼성 계열사는 지난해 11월 17일 서초동 사옥 3개 동에 입주를 마쳤다. 삼성생명 소유의 A동에는 삼성중공업 본사가 들어왔다. 삼성물산은 B동에, 삼성전자는 C동에 둥지를 틀었다. 삼성 제조업 계열사 중 ‘대표 주자’가 최첨단 건물에 모인 것이다.


새집 이사의 기쁨도 잠시였다. 금융위기의 충격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했다. 삼성의 대표 기업들도 이를 피하지 못했다. 같은 경제위기를 경험했지만 계열사별로 받은 충격은 조금씩 달랐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곳이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영업적자가 9400억원에 달했다. 분기 실적을 발표하기 시작한 2000년 3분기 이후 첫 적자다. 반면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1% 늘어난 1966억원에 달했다. 삼성물산도 전년 동기보다 22.7% 줄어들기는 했지만 46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사옥별 실적 기상도’를 보면 ‘A동 맑음’ ‘B동 보통’ ‘C동 흐림’이다.

실적이 나쁠수록 조직의 개편 강도는 셌다. 삼성전자는 본사가 사실상 해체됐다. 반면 삼성물산이나 삼성중공업은 조직에 큰 변화가 없었다. 임원급도 거의 줄지 않았다. 이들 두 회사는 상대적으로 좋은 실적 덕에 1월 사장단 인사에서도 부회장을 한 명씩 배출해 축하 분위기였다. 삼성중공업은 이미 확보해 놓은 수주 물량이 3년6개월치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경영지원·법무·감사·IR·홍보 등 일부 팀만 남기고 모두 현장으로 보냈다. 경영기획팀·해외지원팀 등 주력 조직과 인사 기능까지 다 현장으로 나갔다.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 오던 경영지원총괄본부도 해체됐다. 경영기획·재무·홍보·IR 등 핵심 역량이 집중된 경영지원총괄본부는 그룹 내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의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이곳이 해체된다는 것은 ‘관리의 삼성’이 ‘현장의 삼성’으로 변신했다는 의미다. 본사 인력 1400명 중 1200명이 현장으로 배치됐다. 사장급은 14명에서 11명으로 줄고 임원급은 20%가량 감소했다. 앞으로 반도체·LCD·휴대전화의 뒤를 이을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삼성의 과제다. 우리투자증권의 박영주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신성장동력 사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 매출이 생길 정도로 가시화된 사업은 없다”며 “앞으로 신성장동력 사업을 강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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