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 시평

"100살도 자신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인생은 80세부터다. TV만 보지말고 밖으로 나가라. 이 나이에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이 얼마 전 자신의 80회 생일기념으로 3900m 상공에서 낙하산 점프를 한 뒤 던진 말이다. 여든살에 고공낙하를 하는 부시 전 대통령한테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다름아닌 '도전과 열정'이다. 아울러 스스로의 활기찬 모습을 통해 미국 사회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도 돋보인다.

또 거기엔 나이가 들어간다 해서 '잉여물' 취급하지 말라는 경고의 뜻도 담겨 있다. 물론 미국에만 활기찬 80대가 있는 것은 아니다.

*** 아버지 부시, 8순 기념 고공낙하

40년 가까이 언론계 활동을 해온 원로이자 예총 회장과 정무장관을 지냈던 조경희 여사는 최근 자신의 팔십 생애를 돌아보는 자서전을 냈다. 그런데 '조경희 자서전'이란 다소 투박한 책이름 앞에 '언제나 새 길을 밝고 힘차게'라는 글귀를 달아 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조경희 여사는 올해 86세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도 새 길을 꿈꾼다. 지미 카터가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늙기 시작하는 것은 후회가 꿈을 덮기 시작하면서부터" 라고. 그러나 옛 길에 연연치 않고 새 길을 꿈꾸는 열정이 있으니 조경희 여사는 여전히 젊은 셈이다.

동아전과.동아세계대백과사전 등으로 유명한 동아출판사 창업주이자 원로 출판인인 김상문옹은 올해 나이 아흔이다.

그 역시 최근 '100살 자신있다'는 제목의 책을 냈다. 김옹은 쾌식.쾌면.쾌변에 아침마다 4~5km씩 땀이 약간 날 정도의 속보로 걷는 운동을 하고, 봄과 가을에 사흘씩 단식하는 것이 자신의 건강비결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5년 전부터는 자신의 오줌 한 컵을 마시는 요료법(尿療法)을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김옹의 진짜 건강비결은 출판을 향한 지칠줄 모르는 도전과 열정이 아닐까 싶다. 그 새로운 도전과 열정이 그를 강하게 붙들고 있는 셈이다.

역시 여든살인 김기일옹은 바로 김상문옹이 건강비결 중 하나로 꼽은 그 요료법을 연구해 올 초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기일옹은 오줌이 절대 더럽지 않다고 강조한다. 노폐물 덩어리인 대변과 달리, 오줌은 혈액이 콩팥에서 여과돼 방광에 모였다가 배출된 물질로 단백질.칼슘.아미노산 등 200여가지 영양성분과 질병 치유 항체가 다량 함유돼 무좀.치질.탈모.비만은 물론 성인병과 부인병, 심지어 암을 치료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김기일옹 역시 비단 요료법의 실천 때문만이 아니라 여든 나이에도 주체하지 못하는 그 배움에의 열정 덕분에 건강한 것이 아닐까 싶다. 열정만한 보약이 없는 셈이다.

이수그룹 김준성 명예회장은 올해 여든네살이다. 그도 얼마 전 '두 대의 양말 기계가 놓인 풍경'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냈다. 1950년대 중반 '칠복 양말'이란 상표를 내걸고 처음 사업을 시작해 대구상공회의소 부회장, 대구.제일.외환 은행장, 산업.한국 은행 총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삼성전자 회장, 대우 회장, 이수그룹 회장 등 화려한 인생역정을 거쳐온 그다. 하지만 그에게서 지금도 여전히 손놓을 수 없는 열정의 대상은 다름아닌 소설이다. 그는 지금도 미래 소설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열정은 항상 새로운 미래를 열기 마련인가 보다.

*** '동아백과' 김상문 옹의 젊음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처럼 열정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결국 열정과 도전, 그리고 꿈이 있는 한 삶은 마침표를 찍지 않는 법이다.

우리 사회의 80대들은 20세를 전후해 조국의 독립을 경험했고, 30세를 전후해 동족상잔의 쓴잔을 맛본 세대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서 40대와 50대, 그리고 60대를 관통하며 조국 근대화에 몸바쳐 오늘 우리가 이나마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든 당사자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턴가 그들을 잊고 산다. 그들이 우리의 뿌리임도 망각하고 있다. 이 어리석은 망각으로부터 헤어나 여전히 살아 있는 그들을 통해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눈을 가질 때 우리 사회는 좀 더 전진하지 않겠는가.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