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퇴직급여 안전대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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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헌법재판소가 근로기준법상의 기업파산시 근로자의 퇴직금 우선변제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림으로써 퇴직금의 안전성이 크게 흔들리게 됐다.

헌재는 액수와 관계없이 퇴직금을 우선변제토록 한 것은 금융기관등의 질권이나 저당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그 효력을 정지시켰다.

물론 이번 결정으로 퇴직금제도가 뿌리째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 영향을 받게 될 도산기업체의 근로자가 6만6천여명이고 청산되지 않은 퇴직금도 7백억원이 넘는다고 하니 이들에게는 청천벽력 (靑天霹靂) 같은 소식일 것이다.

기업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등의 권리를 생각하면 헌재의 결정에 납득할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퇴직금이 갖는 의미를 생각할 때 근로자들에게는 생존권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에게 퇴직금은 유일한 노후보장장치다.

특히 실직자들에겐 생활비나 전업자금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기업의 도산으로 직장을 잃은 근로자들이 퇴직금마저 제대로 받을 수 없다면 생계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나 다름 없다.

또 근속연수에 비례해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퇴직금은 사용자의 시혜가 아니라 근로에 대한 대가, 즉 임금의 성격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에서도 근로기준법으로 이 제도의 시행을 강제하고 있으며, 기업측은 퇴직금충당금을 적립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자의 권리를 제한한 헌재의 결정은 노동법의 원칙을 전면 부정한 것이라는 노동계의 반발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이때문이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으로 퇴직급여제도의 정비가 불가피해졌다.

과연 몇개월분의 퇴직금을 우선변제해야 하느냐가 당장의 논란거리가 되겠지만 우리는 이 기회에 퇴직급여의 안전성을 확보할 새로운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상당수의 기업들은 각종 이유로 그동안 퇴직금충당금을 제대로 적립하지 않거나 이를 임의로 사용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퇴직금제도 자체에 대한 논란과 함께 연봉제를 시행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지만 퇴직금제도는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안전성을 위해 퇴직금관리를 제3자에게 맡기는 기업연금의 시행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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