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진출 한국 기업·은행 자금조달 비상 … 미국.영국.일본 현장점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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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연초부터 빚어진 대형부도사태가 기아의 부도유예로까지 이어지면서 해외에 나가있는 국내금융기관과 한국계기업들의 해외자금조달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경제 전체에 대해 경계의 눈초리가 쏠리면서 이것이 신용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뉴욕.런던.도쿄 (東京) 등 주요 금융시장에 나가 있는 본사 특파원들을 연결해 현지상황을 진단해 본다.

▶뉴욕 = 한국계은행들은 현재 1~3개월물은 거의 빌릴 수 없고 하루짜리 단기물도 리보 (런던은행간금리) +0.5~0.6%선에서 조달하는 실정이다.

사정이 어려운 제일은행은 리보+1%이상의 금리를 주고도 돈을 빌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일부 한국계은행들은 삼성등 국내 우량대기업에 우회대출을 부탁하는 사례마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현지진출 한국기업들의 차입여건도 점차 빡빡해지고 있다는게 자금담당자들의 실토다.

현지의 소규모은행들이 대출을 꺼리자 다급해진 한국계은행들이 금리를 올려가며 일부 대규모은행에 몰리는 바람에 기업들에게 돌아올 몫이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등 우량기업들도 종전에는 3~6개월짜리 자금의 조달금리가 리보+0.3~0.4%였으나 요즘은 0.1~0.2%포인트의 추가금리를 요구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현대.삼성.대우등 대기업들은 금리는 다소 올랐지만 조달자체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는 이미 AT&T와 1억달러어치 리스계약을 맺었고 대우의 양키본드발행도 큰 차질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제일은행 현지법인은 가뜩이나 신용도가 떨어진 마당에 뉴욕주 은행국과 연방예금보험공사 (FDIC) 의 감사에서 부당한 영업행태가 적발돼 지점장이 대기발령을 받고 잭슨 하이츠지점의 폐쇄를 검토하는등 2중고를 치르고 있다.

뉴욕 = 김동균 특파원 뉴욕지사 = 김경민 기자 ▶런던 = 유럽의 일부 대형은행들은 최근 산업은행을 제외한 한국계은행에 일체 돈을 빌려주지 않는가하면 1백% 정부출자기관인 산업은행에 대해서조차 대출을 중단한 은행마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한국계은행에 대해 국제결제은행 (BIS) 기준에 맞춘 경영자료의 제출을 요구하고, 경영상태의 개선이 없는한런던지점의 영업활동을 제한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국계 은행들중 일부는 앞으로 신용등급이 한단계만 더 하락하면 '투기등급' 으로 분류돼 더이상 영업을 할 수 없는 형편이고 다른 은행들도 추가금리를 지불하면서도 자금조달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계은행들은 한보사태이전에 리보+0.2~0.3%에 돈을 빌렸으나 그후로는 조달금리가 리보+0.6%까지 올라갔고 최근엔 가산금리가 1%까지 치솟았다.

차입기간도 길어야 한달이고 짧게는 2~3일이 보통이며 하루짜리 급전으로 연명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자금사정이 어려워지자 런던에 진출한 한국계은행들은 대출금을 회수하는등 영업을 축소하고 있는데 이바람에 현지진출기업들은 일부 우량대기업을 빼고는 극도의 자금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런던 = 정우량 특파원 ▶도쿄 = 제일은행 도쿄지점은 요즘 콜시장에 아예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잇따른 대기업의 부실화로 국제신용도가 형편없이 떨어지는 바람에 일본금융기관들이 상대를 안해주기 때문이다.

다른 한국계은행들의 도쿄지점도 일본금융시장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일본금융기관들이 한국계 금융기관에 설정해 놓은 단기자금의 총규모는 약 3천~4천억엔으로 추정되는데 최근들어 이 규모가 줄어드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게 은행관계자들의 말이다.

한일은행 도쿄지점의 박판식 (朴判植) 차장은 "추가금리 부담에다 요즘은 2~3개월짜리 자금은 구하기조차 어렵고 하루짜리 초단기물로 버티고 있는 상황" 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한국계 은행들은 기본 콜금리 0.6%에 0.125%를 얹어줘야 자금을 빌릴 수 있는데 그나마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도쿄 = 김국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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