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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연봉제 확산…직장문화 뭐가 달라졌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남들만큼 했는데 왜 나에게 낮은 등급을 줬느냐. 평가기준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 " 연봉제를 실시중인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개인별 연봉을 통보한 직후 자신의 연봉에 불만인 일부 직원들로부터 이같은 내용의 항의를 받느라 곤욕을 치른다.

지난해부터 연봉제를 도입하는 기업이 크게 늘면서 달라진 직장 분위기중 하나다.

입사동기간에 연봉이 1천만원까지 차이나는가 하면, 입사후배가 선배보다 돈을 더 받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기업에서는 '보안유지' 를 위해 월급명세서를 봉투에 넣어 밀봉해 지급하기도 하고 이를 아예 없앤 곳도 있다.

'우리' 보다 '나' 를 중시하다보니 개인주의가 팽배해진다는 비판도 있다.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들은 그러나 생산성이 눈에 띄게 올라가고 인력관리도 한결 쉬워졌다고 말한다.

◇ 회사를 떠나는 직원이 늘어난다 = 올해 연봉제를 처음 시행하는 효성그룹은 부장의 경우 최하등급과 최상등급의 연봉 차이가 최고 9백만원. 부장 평균연봉 4천5백만원의 20% 수준이다.

내년에는 훨씬 더 벌어진다.

94년 연봉제를 도입한 두산그룹은 부장의 경우 이미 1천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최고 등급인 SA등급과 최하 등급의 격차가 2천만원까지 벌어진다는 게 그룹측 설명이다.

이는 부장 평균연봉 4천5백만원의 44%에 해당되는 큰 금액이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차장이 부장보다, 과장이 차장보다 연봉이 더 많은 '역전현상' 까지 생기고 있다.

효성T&C는 연봉조정위원회를 만들어 이의제기 절차를 두고 있지만 아직 이 채널을 이용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게다가 '좋은 연봉 = 승진' 등식이 성립되면서 낮은 등급을 받으면 승진에 치명타를 입게 돼 회사를 떠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한화종합화학은 지난달 21일 처음으로 연봉제를 실시키로 하고 개인당 연봉액수를 통보하자 부장 1명이, 효성T&C는 올해 1월 사원 5명이 회사를 떠났다.

두산상사는 지난해 1월 18명이, 올해는 2명이 자진 또는 권고사직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낮은 등급을 받은 사람의 20% 정도는 자진 퇴사하고 나머지는 권고사직 형태로 회사를 떠난다" 고 말한다.

반면 연봉제의 수혜자도 등장한다.

두산상사는 94년 이후 SA등급을 받은 10명을 발탁승진시켰다.

◇ 월급명세서가 사라진다 = 연봉제의 생명은 '보안유지' .두산그룹은 95년부터 월급명세서를 없앴다.

똑같은 내용의 명세서를 매달 나눠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개인별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전산망에서 검색할 수 있게 했다.

효성그룹은 까만 봉투에다 월급명세서를 밀봉해서 준다.

한화도 밀봉해 지급한다.

두산씨그램 관계자는 "매월 한번 명세서를 아내에게 건네줄 때 '수고했다' 는 말을 들었는데 요즘은 이마저 사라졌다" 고 말한다.

가계지출 방식도 바뀐다.

해태유통의 한 직원은 "보너스가 나오는 달에 대출금을 갚도록 돼 있었으나 총임금을 매월 정액으로 나눠받다보니 매월 일정액을 떼놨다 대출금을 갚고 있다" 고 말했다.

지출 패턴이 달라지는 것이다.

◇ 간편해진 기업의 인력관리 = 연봉제는 '사업본부보다는 우리 팀' '팀보다는 나' 를 필연적으로 강조하게 된다.

동양증권 관계자는 "연봉제 이후 약정고를 올리기 위해 하루에 저녁약속을 4군데나 하는 사람도 있다" 면서 "직장동료들간의 술자리가 줄고 개인주의화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 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연봉제를 도입하는 회사들은 개인주의의 '벽' 을 깨기 위한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한화종합화학은 팀및 본부간 1박2일 코스의 토론회를, 두산상사는 매월 팀장 미팅과 연간 두 차례 합숙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효성과 한화그룹측은 "연봉제 이후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하는 게 눈에 띌 정도" 라고 말한다.

동양증권측은 연봉제 시행 이후 개인별 약정고 실적이 평균 10%이상 올랐다.

기업 또는 조직별 실적관리도 한결 쉬워졌다고 한다.

두산그룹 박용오 (朴容旿) 회장은 "연봉제 이후 인건비 산정및 인력관리가 훨씬 쉬워졌다" 고 말한다.

◇ 연봉제 도입 계속 늘어난다 = 94년 1월 두산그룹이 과장급 이상 관리직 사원들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도입한 이후 지난해 한화그룹.동양SHL.해태유통등이 뒤를 이었다.

효성그룹.동부건설.한국화장품.해태전자.삼양사.동양증권.LG칼텍스정유등이 올들어 연봉제를 도입했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연봉제가 '대세' 로 굳어지고 있다" 고 말한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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