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수출망 없이 생산기지로만 … GM대우의 설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해외 판매망을 전부 GM 본사에 의존해온 GM대우가 아픔을 겪고 있다. 본사의 주문 취소로 수출차가 인천항에 쌓여 있다. [중앙포토]


#현대차는 지난해 10월 금융위기 여파로 해외 판매가 급감, 울산·아산 공장에서 생산한 수출차 재고가 평상시보다 30% 이상 더 쌓였다. 현대차는 해외법인에 비상을 걸고 수출을 독려했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달러당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하자 환차익을 노리고 해외법인에 물건을 밀어넣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지난해 10, 11월 수출이 역대 사상 최고치(월 22만5000대)를 기록했다.

GM대우가 수출망을 100% GM 본사에 의존하면서 아픔을 겪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이 회사의 내수 판매(11만6520대) 비중은 전체 판매(190만5088대)의 6.1%에 불과하다. 이 회사의 2003년 내수 판매 비중이 20%가 넘었지만, 이후 GM의 글로벌 생산기지로 바뀌면서 내수 판매는 제자리걸음을 한 데 비해 수출물량은 연평균 30% 이상 증가했다. 내수 비중이 줄어들다 보니 본사 주문이 끊기면 직격탄을 맞는 구조가 돼버렸다. 2006∼07년 2년간 연속 5000억원대의 순이익을 냈지만 지난해 4분기부터 본사 주문이 뜸해지면서 현금도 상당 부분 소진됐다.

급기야 GM대우는 지난 19일 산업은행에 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제이 쿠니 홍보·대외총괄 GM대우 부사장은 “하반기 출시할 마티즈 후속 차량에 대한 투자대금이 부족해 산은에 지원을 요청한 것이지 유동성 부족에 따른 것은 아니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이 회사 김종도 홍보담당 전무도 “수출 주문은 줄었지만 현재 수출차 대금은 바로 입금되는 등 미국 본사와의 거래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GM 본사가 정상화되지 않는 한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GM대우는 본사의 충격을 그대로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실제 GM 본사의 회생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올해 1분기 수출 주문은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줄었다. 이에 따라 공장 가동을 최소화하면서 생산물량을 줄이고 있다.


내수 판매도 어려운 상황이다. 내수 영업망은 100% 대우차판매에 의존했으나 지난해 11월부터 대우차판매의 자금난이 심화하면서 판매가 더욱 위축됐다. 궁여지책으로 지난달 경기도·서울 일부 딜러를 직접 관리하기로 했지만 어려움은 여전하다.

생산기지로서의 어려움은 르노삼성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자체 해외망이 없어 수출의 70%를 르노 네트워크를, 나머지는 닛산 글로벌 판매망을 이용한다. 도요타 미국 판매 부사장을 지낸 이마이 히로시(제주 블루하와이 대표)는 “GM대우가 자체 해외 판매망을 만들 여력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역할이 글로벌 생산기지에 머무르다 보니 완충지대가 없어 해외 불경기의 타격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희망적인 부분도 있다. GM 본사가 파산보호 신청을 한 후 자회사 정리에 들어가더라도 생존 가능성이 크다. 소형차가 많이 팔리는 시대에 GM의 소형차 생산을 전담해온 GM대우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태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