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실내국악단 '다스름', 서양음악에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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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서양음악에 대한 국악의 도전은 거세다.

댄스뮤직에 태평소를 끼워넣고 재즈에 꽹과리를 등장시킨다.

국악기로 양악을 연주하는가 하면 민요에 랩까지 삽입한다.

여기에 색다른 도전장 하나. 여성실내국악단 '다스름' 이 펴는 잔잔한 문화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현장을 들여다보자. 방학을 앞둔 지난달초 한 초등학교 교실. 모처럼 친구들이 다닥다닥 붙어앉아 시시덕거리는 즐거움을 만끽하느라 2백명 남짓한 아이들은 앞에 나와 인사하는 유은선 (35) 단장과 9명의 단원들이 안중에도 없다.

따분하게 국악이라니. "여러분, '개구리 소년' 을 연주할게요. " 음악이 시작되는데도 아이들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그런데 어, 비틀비틀 이상한 리듬에 신기한 악기들. 표정이 달라진다.

한명 두명 손뼉을 치며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키득키득대며 어쩔 줄 몰라하는 친구도 있고 단원의 연주모습을 흉내내는 녀석도 생겨난다.

두번째 노래 '푸른하늘 은하' 가 나올 땐 이미 잡담하는 아이는 없다.

여기서 단원들의 악기 소개. 두 줄 사이에 활을 넣고 연주하는 해금이 '꼭두각시' 를 노래하자 박수와 탄성이 울린다.

"이 소리는 어때요?" 활이 기묘하게 움직이며 코고는 소리를 내자 와락 웃음이 터진다.

'전설의 고향' 에서 달밤에 흘러나오는 효과음악에는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덩 - 기덕, 쿵 더러러' 유단장의 굿거리 장단 시범에 어깨를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며 박수로 따라하는 게 제법이다.

'풍년가' 에 장단을 맞추며 춤추는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이번엔 창작곡 '종달새' 를 한 대목씩 주고받는다.

"종달아, 종달아, 너 어디 갔었니?" 다스름이 묻자 아이들이 대답한다.

"산에 산에 갔었다. " "뭐하러 갔었니?" 하고 메기자 "친구 보고 싶어서 산에 갔었다" 라며 받는다.

이쯤에서 아이들은 국악과 완전한 혼연일체를 이룬다.

몰두한다.

록 콘서트장에서 '헤드 뱅잉' (음악에 맞춰 머리를 흔드는 것) 을 하며 괴성을 질러대는 10대들의 열정이나 '쾌지나 칭칭 나네' 에 맞춰 친구의 등판을 두드리는 아이들의 몰입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 순간 밀폐된 방에 뿌려지는 국악의 마력은 다른 대중음악의 그것을 넘어선다.

공연은 한시간. 더 해달라는 아우성을 뒤로 하고 그들은 떠난다.

늘어지지 않고 탄탄하게, 그래서 큰 울림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강당 대신 비좁은 교실을 고집하는 이유도 장구의 진동과 대금의 서늘함을 피부에 닿게 하기 위함이다.

단원들은 국악을 심기 위해 주로 '오염이 덜 된' 곳을 찾아간다.

헤비메탈에 청각의 역치가 치솟지 않은 곳,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이미 편견의 장벽을 구축해 놓지 않은 공간으로 떠난다.

그래서 초등학교가 주무대다.

그들이 돈 곳은 벌써 80여 학교. 죽음과 싸우는 환자들, 범죄의 늪에서 건져진 청소년들에게도 그들은 우리 음악을 선사한다.

90년부터 시작된 이들의 작업은 이미 반향이 크다.

처음엔 냉대하기 일쑤였지만 이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부른다.

"단원 대부분이 국립국악관현악단.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등의 소속이어서 공연시간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순회만큼은 멈추지 않을 작정입니다. " 유단장은 어렸을 때 각인시키는 것이 국악의 우수성을 알리는 가장 빠른 길이라 믿는다.

20~30대 여성들로만 구성한 이유는 뭘까. "음악의 지향점을 조율하기가 쉽지요. 남녀차별이 심한 국악계의 풍토를 바꾸는 운동도 같이 펴나가고 있습니다. " '현장 침투' 못지않게 이들이 중시하는 것은 국악 특유의 3박자 선율을 아름답게 가꿔나가는 작업이다.

우리 악기와 리듬으로 섬세한 감정묘사를 끌어낸다.

여기에 잠깐 동참해 본다면…. '짝짝짝, 짝짝짝' 손뼉으로 빠르게 3박자를 치며 '가을 편지' 를 불러보자.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받아 주세요. " 이게 바로 우리 음악의 아름다움이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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