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다시 불안해진 금융시장 … 비상경제대책 속도 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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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동유럽발(發) 충격으로 금융시장이 다시 불안해지고 있다. 헝가리·루마니아 등의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이 고개를 들면서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유럽 금융기관들의 신용등급이 일제히 떨어졌다. 그 후유증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 시장도 외풍을 피해가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원화 가치는 8일 연속 떨어져 달러당 1481원으로 내려앉았다. 외국인의 순매도 공세가 거세지면서 코스피지수는 1100선을 위협받고 있다. ‘3월 위기설’도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국내 은행들의 해외차입이 어려워지고, 금리인하의 여파로 외국인들이 올 들어 국내 채권을 대량으로 팔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비관론이나 막연한 낙관론은 모두 금물이다. 외풍을 잠재울 뾰쪽한 방법도 없다. 지금은 참고 견디면서 우리가 할 일을 차근차근 진행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우선 국제 금융불안의 장기화에 대비해 미·중·일과 체결한 통화 스와프의 규모를 확대하고 만기를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이미 발표한 비상경제대책의 실행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분명해진 이상 하루빨리 추경예산을 편성하고 일자리 유지와 사회안전망 강화에 보다 과감하게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다행히 정부는 어제 공적자금을 조성하고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수준의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비상대책을 마련했다. 경제가 예상 외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미리미리 위기 대응수단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지금 세계 각국은 은행 국유화는 물론 일반 기업에도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유례없는 비상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우리도 스스로 자신의 발목에 족쇄를 채울 필요는 없다. 이미 세계경제의 V자형 반등은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잘해야 U자형, 더 많은 전문가들은 L자형 장기침체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제일 위험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잘하고 있다”는 자기최면에 빠져 속절없이 대공황을 심화시켰던 미국 후버 대통령의 실패를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