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안전기구 설립" 누가 믿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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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한항공 801편 추락사고가 빚어지자 12일 정부와 신한국당은 재빠르게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 (NTSB) 와 유사한 형태의 대통령 직속 '안전대책기구'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제 규모와 함께 증가한 우리나라 항공운송 규모는 국제민간항공기구 (ICAO)가 집계한 국가별 순위에서 화물부문은 세계 6위, 여객부문 세계 11위 (96년) 를 차지할 정도로 양적 측면에선 항공대국이 된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론,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고 (87년).대한항공 트리폴리공항 사고 (89년).아시아나항공 목포공항 사고 (93년)에 이은 올해의 괌사고등 대형참사가 주기적으로 반복돼 비행시간당 사고발생건수 다발국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괌공항 사고발생 직후 외신들이 조종사의 과실가능성을 부각시킨 것도, 안전을 위해 회항을 선택하기보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무리한 착륙을 시도하다 사고를 빚었던 그간의 원죄 (原罪)에 기인하는바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항공안전에 대한 보다 종합적인 대책마련과 원인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라는데 이견을 달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상설 안전기구 설립추진 등 정부와 정치권의 대책이라는 것이 대형사고가 빚어질 때마다 왁자지껄 논의되다 아무런 결실없이 사라져버리는 '해거리 사후약방문' 이라는데 있다.

정부는 89년 대한항공 사고가 일어나자 조사전담기구의 설립을 추진하다 91년 관계부처 협의과정에서 흐지부지됐고, 93년 아시아나항공 사고 직후에도 '항공사고 조사위원회' 설립.운영방안을 발표했다가 유야무야됐었다.

당시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은 미국.일본 등 선진 20여개국이 대통령 직속, 또는 교통부장관 직속으로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며 항공안전을 위한 상설기구 설립 필요성을 역설했었다.

하지만 상설기구 설립안은 94년과 95년 항공사고가 한건도 발생하지 않은 틈 (?

) 을 타 용두사미 (龍頭蛇尾)가 됐고 지금도 항공사고조사를 담당하는 건설교통부 공무원은 4명에 불과하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무조건 기구를 신설하고 인력을 증원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이 임시방편으로 위기를 넘기기에 급급하거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앞에 놓고 경제성만 따지며 주판알을 퉁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권영민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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