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활동 애니메이터 피터 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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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온 플럭스 (Aeon Flux)' 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얼굴도, 팔도 길쭉한 약간 기괴하게 생긴 주인공이 활약하다 허망하게 죽고마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SF물. 91년 미국의 음악전문채널인 MTV를 통해 방영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작품을 그린 사람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올해 서른 여섯의 한국인 피터 정 이다.

2일 오후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린 그의 첫 공식 강연회에는 4백석이 넘는 좌석을 가득 메울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가 스토리 보드를 맡고 있는 허영만 원작의 애니메이션 '망치' 의 견본 필름과 직접 만든 나이키.펩시콜라.리바이스 CF, 그리고 '이온 플럭스' 견본 필름을 함께 보며 디즈니나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또다른, 그의 다이나믹한 작품세계에 빠져들었다.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세계 곳곳을 돌아다녀서인지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말하는 독특한 분위기와 천차만별의 질문때문에 강연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뤘다.

그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그 스토리를 만들고 캐릭터를 창조하는데 관심이 있다" 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월트 디즈니사가 애니메이터 육성을 위해 만든 캘리포니아 예술대학 (Cal Arts) 를 졸업하고 디즈니에 스카우트돼 2년간 기획을 맡았던 시절부터, 새로운 SF애니메이션인 '알렉산더' 를 만들고 있는 현재까지 자신의 얘기를 간단하게 들려주었다.

그의 작품의 특정은 스토리 전개의 예측불허성. 그는 자신의 작품이 난해하다는 질문에 대해 "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는 또 "한국의 애니메이터들은 세계에서 일을 가장 많이하고 또 빨리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 전제한뒤 "하지만 너무 빨리 자기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한다" 는 말로 작품의 부족한 완성도를 꼬집었다.

그는 만화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며 상상력의 개발은 훈련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지론을 내내 펼쳐보였다.

그의 작품 '이온 플럭스' 는 14일부터 열리는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 (SICAF) 과 29일부터 열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그의 강연회와 함께 상영될 예정이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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