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루저 문화와 청년실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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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얼마 전 한 주간지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루저(loser) 문화’를 어떻게 볼 수 있냐는 것이었다. 루저 문화란 말 그대로 패자(敗者)들의 문화다. 세계화 시대에 승자(勝者)들의 문화가 이른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문화라면, 세계화에 따른 사회 양극화가 만들어 내는 주변인 문화가 다름 아닌 루저 문화다.

루저 문화는 ‘88만원 세대’ 또는 ‘트라우마 세대’의 정서를 대변한다. 자신에게 놓인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며, 사회적 약자들의 삶에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구체적으로 루저 문화는 인디밴드의 대중가요, 그래피티 예술(graffiti art·길거리 미술), 그리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같은 소설 또는 『골방환상곡』 같은 만화 등 다양한 장르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학적으로 루저 문화는 세계화의 물결에 올라타려는 ‘박진영식 문화’도 아니고 기성 권위에 도전하려는 ‘신해철식 문화’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싸구려 커피를 마시고”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비애와 체념, 그리고 유머가 공존하는 ‘장기하식 문화’에 가깝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한 바 있는 기존의 ‘보수 대 진보’를 넘어선 세계화 시대 ‘승자 대 패자’의 새로운 사회구도에서 루저 문화는 후자 그룹의 내면 풍경을 드러낸다.

나는 ‘루저’라는 말에 담긴 부정적이고 안쓰러운 의미를 고려해 세계화 시대의 ‘비주류 문화’ 또는 ‘저항 문화’라고 부르는 게 나을 거라고 그 기자에게 말했다. 비주류 문화는 기성 문화가 갖는 엘리트주의와 엄숙주의에 도전함으로써 그 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게 하는 긍정적 역할을 담당한다. 1960년대 서구사회의 반(反)문화, 90년대 우리 사회의 신세대 문화가 그러했다.

정치사회학 전공자가 요즘 같은 정국에 뜬금없이 문화 얘기를 하는 게 한가롭게 보일지 모르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루저 문화의 정치경제학, 다름 아닌 청년실업에 관한 것이다.

이제 졸업을 하는데도 갈 곳 몰라 하는 학생들을 보면 선생으로서 안쓰러움을 넘어선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청년층(15~29세)의 실업률은 8.2%로 전년도 대비 1.1% 상승했다. 20대의 고용률 감소폭은 -2.5%를 기록해 전 연령층에서 가장 높았다.

청년실업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제시됐다. 세계화의 충격 및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른 ‘고용 없는 성장’ 같은 세계사적 조건에서 과잉 고학력화와 구인·구직자 간의 서로 다른 눈높이 등에 따른 인력 수급의 불일치로서의 ‘잡 미스매치’와 같은 우리 사회의 특수한 조건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결합돼 있다.

문제는 대안이다. 그동안 정부는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노무현 정부의 예스(YES: Youth Employment Service) 프로그램이나 이명박 정부의 행정인턴제는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의 효과는 신통치 않아 보인다. 생각한 만큼 괜찮은 일자리를 늘리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임시직 고용으로는 젊은 세대들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해법은 두 가지다. 첫째, 더욱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청년실업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청년실업자들의 추가 고용을 의무화한 벨기에의 ‘로제타 플랜’ 같은 프로그램의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를 수용한 기업엔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둘째,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경제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고용 창출이 어려운 시대인 만큼 정부·정당·기업·대학·시민단체 등 주요 사회조직들은 일자리 만들기를 위한 역사적 대타협을 추진해야 한다.

“스포츠신문 같은 나의 노래, 마을버스처럼 달려라, 스끼다시 내 인생”이라고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은 노래한다. 교문을 나서는 게 두려운 졸업생들에게 비록 나의 말이 공허하겠지만 그래도 미래의 희망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너희들은 달빛요정과 같은 미래를 꿈꿀 권리가 있다. 긴 인생에서 9회 말 역전 만루홈런의 희망을 품을 자격을 갖고 있다. 나를 포함한 기성 세대는 일대 각성과 대안 모색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