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 변함 없는 바위처럼 현대사 감싸오신 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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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추기경의 말년에 일부 사람들이 “좀 변하신거 아니냐?” “옛날 같지 않다” “보수적이 되셨다”등등의 의견을 내어 놓았다. 심지어는 일부 사제들까지 나서서 이 의견에 동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추기경을 몇 차례 가까이에서 모실 기회를 가졌던 필자는 가까이서 지켜본 그 분의 말씀과 행동에 관한 몇 가지 체험을 적고 싶다.

2006년 7월 16일부터 24일까지 교황청 일치 촉진 평의회 의장이신 발터 카스퍼 추기경이 아시아 지역 일치 세미나와 세계 감리교 대회에서 교황청과 감리교 사이에 의화론 합의서 체결차 내한하셨을 때 일이다. 추기경은 그 일정을 거의 내내 함께하셨다. 필자는 이 행사의 총 진행을 맡은 터라 가까이에서 추기경을 모실 기회가 있었다. 아시아 일치 세미나(여기서 일치란 개신교와 천주교의 일치를 뜻함) 개회식 축사에서 추기경은 “상대를 이해해야 이해받을 수 있다, 과연 우리는 개신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좀 더 상대를 알려고 애쓰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일치 운동이다. 일치 운동은 먼저 사랑하는 마음으로 친교를 나누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세계 감리교 대회 본행사에서는 따로 연설하실 기회는 없었지만 대기실에서 감리교 지도자들과 지내시는 30분 내내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 나가시는 따뜻한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어린이 같으셨다. 그 자체가 일치이고 한 형제인 모습을 드러내는 훌륭한 연출가셨다.

생명운동 현장에서 추기경을 자주 뵐 기회가 있었다. 은퇴 후 그날 건강에 따라 스케줄이 취소되곤 했는데 생명운동 거리 행사만큼은 건강과 상관없이 참여하셨다. 어깨띠를 두르시고 1시간 동안 진행되는 행진도 마다 않으셨다. 사제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생명에 관한 존엄성이 이 세상에 현존하는 어떤 가치보다도 원천적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현장에서 회중들에게 당신이 선창을 하시고 따라 하라는 구호가 있다. “낙태 없는 세상을 만듭시다!” “생명 조작 없는 세상을 만듭시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처럼 초라한 노 성직자의 외침에 사람들은 얼마나 큰 깨우침을 얻는 것일까!

세상의 가치는 정권에 따라 혹은 시대의 조류에 따라 변한다. 어느 정권의 영웅이 어느 정권에서는 파렴치한이 되는 모습을 보는데 10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진리에 충실해야 한다. 그 근본적인 진리는 무엇일까? 추기경님의 삶에서 그 진리를 본다. 생명과 일치에 대한 굳은 확신!

그러나 이 두 가치는 사심이 들어 있는 가치들에 의해서 공격을 받는다. 잘 관찰해 보면 추기경의 가치는 어떤 정권에서든 그들의 가치에 의해서 부정되었다. 그 분이 진정 원하셨던 것은 생명윤리법의 변화였고 국민의 화합과 일치였다. 혹자는 그 분을 민주화의 상징으로 표현하지만 그 평가는 그쪽 분들의 관점인 것이다. 그 관점에서 보면 추기경은 변하신 것이다. 그러나 추기경이 바라보는 가치는 보다 높고 근본적인 데 집중되어 있다. 김 추기경은 변하지 않았다. 세상의 가치가 변했을 뿐이었다.

홍창진 (경기도 여주 점동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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