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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문창극 칼럼

보호주의 파도를 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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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석기는 그렇게 떠났다. 그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한계일 수 있고, 우리 법치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그 결정에 박수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끝난 일이다. 보수란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그 바탕에서 더 나은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 위기의 시절에 우리는 내부 문제로 너무 소란하다. 국회의 폭력이 그렇고, 용산 화재 사건이 그렇다. 얼마든지 매끄럽고 조용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사안들인데도 우리의 한계 때문에 소란해진 것이다. 그런 잡음 때문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신호음을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진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신호가 계속 오는데 이것을 못 듣고 결국 좌초하는 것은 아닐지….

지금 내 귀에 들려오는 신호음은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경고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에게는 험난한 길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나라나 그 돌아가는 이치는 비슷하다. 세월이 좋을 때는 누구나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더불어 같이 잘 살자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워지면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1930년대 경제공황 때 미국을 포함한 유럽 각국이 보호주의로 돌아감으로써 세계 무역량이 60%나 감소했다. 지난 1월 말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브라운 영국 총리는 반 세계화를 경고하며 무역과 금융에서 보호주의를 비난했다. 그러나 귀국해서는 “영국의 일자리는 영국인 노동자에게”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의회도 8000억 달러의 경기 부양안을 통과시키면서 결국 ‘바이 아메리칸’ 조항을 삽입했다. 이 자금이 사용되는 공공 건설에 미국 물건만 쓰라는 얘기다. 세계 지도자들이 머리로는 시장 개방의 필요성을 인식하지만 다급한 현실 때문에 보호주의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듯하다.

보호주의 물결이 거세진다면 피해를 가장 크게 볼 나라는 우리나라 같은 수출 주도형 국가들이다. 일본도 무역을 크게 하는 나라지만 일본의 수출 비중은 1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 총생산(GDP)의 40% 정도를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와 비교할 때 피해가 그만큼 적은 것이다. 영국 노동당의 캘러한 총리는 대처 여사에게 패한 뒤 “세계는 30년마다 크게 물결이 바뀌며 이렇게 물결이 바뀔 때는 백약이 무효다”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지금 세계는 지난 30년 신자유주의로부터 보호주의로 물결이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비록 세계가 급속히 보호주의로 회귀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까지와 같은 개방주의는 분명히 위축될 것이다.

이런 세월이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 남을 것인가. 지금은 그것을 고민할 때다. 우리로서는 수출이 계속 중요하겠지만 상대적으로 내수를 늘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그런 관점으로 이제 북한의 존재를 바라봐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존재가 한국의 탈출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가 경기 부양을 위해 국내 소비를 늘리고 사회간접 시설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덧씌우기에 불과해 규모나 효과 면에서 한계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신개척지가 될 수 있다. 마치 19세기 말 미국 서부가 미국 경제의 프런티어였듯 21세기 북한은 우리의 프런티어가 될 수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미개척지라는 점에서 북한은 우리에게 오히려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북한 경제가 우리에게 편입된다면 한민족의 경제 기반은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과 버금가게 될 것이고, 그만큼 우리는 든든한 내수 기반을 갖게 된다.

서해5도에서 분쟁을 꾸미고, 미사일 실험을 하려는 마당에 무슨 엉뚱한 소리냐, 스스로 먹고 살 능력도 없는 북한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북한이 변하지 않는 한 헛소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안타깝다. 그러나 세계의 물결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도 그에 맞춰 변해야 한다. 당장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최소한 그런 마음 자세는 갖고 있어야 한다. 북한을 짐 덩어리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우리가 살기 위해서도 북한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지난 10년의 경험으로 볼 때 국민은 북한에 대한 맹목적 지원은 바라지 않는다. 정권적 계산으로 북한을 다루면 우리 내부만 분열했다. 정부는 북한 정권의 변화를 기다리더라도 민간 차원에서는 꾸준히 교류와 지원을 늘려가야 한다. 북한 주민에게 한국의 고마움을 알려야 한다. 그들 마음을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난 30년 신자유주의·세계화 덕분에 이만큼 성장했다. 큰 눈으로 보면 그 사이 이만큼 기반을 닦은 것이 고맙고, 이제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에게만 기회를 남겨준 것이 감사하지 않은가. 각 나라의 점증하는 이기주의에 끼여 이 나라가 찌그러지고 만다면 그들은 우리를 얼마나 어리석다고 경멸하겠는가.

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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