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금융위기]9. 끝. 한국은 통화대란 위험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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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통화위기로부터 한국은 안전한가.

태국 바트화에서 시작된 통화위기가 동남아 각국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면서 제기된 의문이다.

더구나 연초부터 계속된 대형부도와 한국 금융기관의 신용실추에 이어 최근 기아사태까지 터지자 "한국은 괜찮겠느냐" 는 의구심이 나라안팎에서 부쩍 늘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에서 통화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국은행의 이강남 (李康男) 국제담당이사는 "한국은 기초경제여건이 동남아 국가와 다르기 때문에 외환위기의 파장이 미칠 가능성은 적다" 고 말한다.

가까운 곳에서 통화위기가 일어났다고 해서 한국까지 한묶음으로 싸잡아 몰아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요란했던 멕시코식 경제위기론이 지금은 쑥 들어가 버린 것만 봐도 성급한 일반화의 맹점은 금방 드러난다.

오히려 외지에선 한국이 곤란을 겪고 있지만 장래는 밝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7월28일자) 는 최근 한국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새벽을 앞둔 어둠' 으로 표현하면서 한국경제가 갖고 있는 저력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또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한국경제의 위기는 제대로 대응하기만 한다면 정경유착과 부채에 의존한 기업확장 행태를 불식시킬 수 있는 호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반적으로 통화위기는 한 나라의 환율이 단기간내에 크게 절하될 것이란 기대속에 투기세력의 대량투매가 일어나 실제로 통화가치가 폭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태국등 동남아국가와 멕시코는 기본적으로 국내산업기반이 부실한 가운데 주로 외자에 의존한 수출산업에 의해 성장이 주도되는 나라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상승등으로 수출경쟁력이 떨어지자 외국자본의 유입이 끊기고 금융기관들은 부실로 치달았다.

경상수지적자가 늘어나고 보유외환이 줄어들면 당연히 통화가치가 떨어져야 할텐데 이들 나라는 외국자본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 무리하게 통화가치를 떠받쳤었다.

또 한가지는 금융.자본시장의 성급한 개방이다.

특히 자국통화가 역외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핫머니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 환투기꾼들의 공격을 불렀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우선 환율제도 자체가 인위적인 고평가를 하기 어렵게 돼있다.

실제로 원화환율은 달러화에 대해 꾸준히 절하돼 왔다.

달러에 환율을 고정시킨 멕시코나 동남아국가들과는 달리 신축적으로 경제상황변화를 반영해 왔다는 얘기다.

또 해외에서 원화를 거래할 수 있는 역외시장 자체가 없는데다 자본시장도 완전히 개방되지 않아 핫머니의 투기적인 공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더구나 최근에는 경상수지도 개선되는 기미를 보이고 외환보유액도 늘어나는 추세여서 외환위기의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동남아에서 빠져 나온 핫머니가 국내에 밀려들어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다 국내금융기관들의 부실이 확대될 경우 외자유출과 환율절하 압력이 커질 우려도 있다.

여기다 앞으로 이어질 자본시장 개방의 확대는 투기자금이 출몰할 여지를 넓혀줄 것이다.

이에 대해 박영철 (朴英哲) 고려대교수는 "앞으로 예정된 개방일정은 착실히 추진하되 환투기에 대한 규제대책을 보다 분명하게 공지함으로써 투기세력의 공격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고 강조했다.

김종수 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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