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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장 헤집기] 纏足금융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1호 35면

아시아에서 국제금융에 일찍 눈뜬 나라는 일본이다. 런던에서 처음 외채를 발행한 게 1870년이다. 그 돈으로 철도를 놓고 군함을 사들였다. 20세기 들어선 전비(戰費) 조달에 나섰다. 하지만 ‘러일전쟁이 일어나면 러시아가 이긴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니 투자자들이 일본 국채에 눈길을 줄 리 없었다.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淸) 일본은행 부총재는 인수자를 찾아 백방으로 뛰었다.

이때 구원의 손길을 뻗친 사람이 미국 은행가 제이콥 시프였다. 러시아를 싫어하던 유대인인 그는 일본 국채를 인수해줬다. 자신이 경영하던 금융회사 쿤 로브의 돈을 통크게 풀었다. 그의 도움으로 일본은 1904년 개전 후에도 런던·뉴욕·파리에서 네 차례나 국채를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쿤 로브는 1977년 리먼브러더스와 합병된다.
당시 일본이 끌어모은 돈은 8200만 파운드. 러일전쟁 전비의 40%쯤 됐다.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20세기 초 런던에서 영국의 국채 금리가 연 3%인 데 비해 일본 국채는 6%였다. 스웨덴(4%), 러시아(5%), 브라질·아르헨티나(각 5.5%)보다 조금 높고, 멕시코(10%)와 터키(13%)보다 훨씬 낮았다.

일본은 고도성장기 이후 국제 금융시장을 다시 노크한다. 이번엔 풍부한 자금력을 무기로 삼았다. 그런데 배타적인 서양 금융회사들이 끼워주질 않았다. 실적을 쌓기 위해 초반엔 손실을 각오하고 덤벼들 수밖에 없었다. ‘하라키리(腹切) 스와프’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다. 피(손실)를 보며 하는 스와프 거래라는 뜻이다. 해외채권을 발행해 놓고 팔리질 않자 일본 금융회사들끼리 서로 사주는 경우도 많았다. 서양인들은 이를 ‘스시 본드’나 ‘후구(鰒) 본드’라고 불렀다. 스시나 복어처럼 일본인들만 먹는 음식 이름을 붙여 조롱한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자 금융사들도 해외에서 철수했다. 그러다 요즘은 바람이 거꾸로 불고 있다. 미국에서 굵직한 매물들이 헐값에 나오자 일본 금융회사들이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노무라증권이 리먼브러더스의 해외영업망을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세계 최강의 제조업에 비하면 금융은 아직 멀었다고 일본 스스로 인정한다. 국제 금융시장에 진출한 지 이미 140년이 돼가는데도…. 그 이유에 대해 속시원하게 답해 주는 사람도 없다. 제조업 육성을 위해 일본 정부가 오랫동안 금융을 쥐고 있었던 게 자생적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분석이 있는 정도다. 그래서인지 금융은 규제투성이의 ‘전족(纏足)산업’이 돼버렸다.

우리도 비슷하다. 뒤늦게나마 규제를 풀고 있으니 다행이다. 4일부터 시행된 자본시장통합법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오래 묶여 있던 발을 풀고 훨훨 뛰게 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규제를 더 죄어야 한다는 말이 들린다. 위기 상황이라 그렇다는 얘기인데, 묶여 있던 걸 더 묶어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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