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 '벌레'를 '용' 만들진 않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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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비자 (韓非子)' 에 보면 비룡승운 (飛龍乘雲) 등사유무 (騰蛇遊霧) 라는 말이 나온다.

하늘을 나는 용 (飛龍) 은 구름을 타고, 용인양 날치는 뱀 (騰蛇) 은 안개속을 노닌다는 뜻이다.

이 말은 구름을 탔기에 '비룡' 이고, 안개속을 노닐었기에 '등사' 가 됐다고 풀이되기도 한다.

그러나 구름이란 걷히게 마련이며, 안개가 개는 것도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개면 용은 '비룡' 일 수 없으며, 뱀은 더군다나 '등사' 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낱 지렁이나 개미 같은 벌레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고 '한비자' 는 갈파한 바 있다.

한데 그런 벌레 같은 것을 '비룡' 으로, 또는 '등사' 로 만들지나 않았는지 우리 언론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는 강한 느낌을 받는 것이 현실적인 상황이다.

물론 용이라든지 대권 (大權) 이란 용어를 일상화한 것이 매스컴의 큰 잘못이란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른바 왕정시대의 발상인 용이나 대권이란 말을 구태여 쓸 필요가 없는데도 그것을 씀으로써 관념상의 착각과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에 수긍이 가지 않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용이나 대권이란 용어를 쓰는 것이 전적으로 잘못됐다는 주장엔 그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 이유의 첫째는 그런 용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오늘날의 시대상황을 왕정시대의 그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느냐 하는 점이고, 둘째는 이미 관용화된 것을 그대로 쓰는 것은 매스컴의 자세로서 질책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셋째로 우리의 문화와 전통의 줄기에서 볼때 용이라든지 그와 연관된 대권이란 말의 근원적인 뜻은 선정 (善政) 과 화합 (和合) 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기대하는 국민적인 심층심리를 구태여 외면할 필요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의 신문이나 방송은 그런 용어의 사용보다 본의 (本意) 든 아니든간에 스스로 '구름' 과 '안개' 의 역할을 하지 않았는지 돌이켜보는 자세가 필요할 것같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런 구석이 있었다면 그것을 하루빨리 지양함으로써 벌레는 벌레의 자리에 가게 해야만 할줄 안다.

벌레가 구름과 안개에 힘입어 '비룡' 이나 '등사' 가 되는 관계를 끊는 것이 절실히 요청된다는 이야기다.

엄격히 말해 용은 구름 없이도 용이어야 하고, 진짜 인물은 인물다움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 뜻에서 오늘날 정치 세계에서 진짜 인물이 누구인지를 철저히 검증하고 국민 앞에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매스컴의 커다란 사명이요, 책임이라고 강조해 마지않는다.

지난날의 독재와 전제체제 아래서는 이른바 민주화투쟁을 첫째 가는 덕목으로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질이나 인격면에서 다소 결함이 있더라도 국민이 지도자로서 지지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문제가 있거나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도 그것을 독재정부가 활용하는데 대한 광범위한 국민적인 거부감이 있었고, 그 결과는 '진실' 마저 조작된 사실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그시절에 등장했던 수법의 한가닥은 '괴문서 (怪文書)' '음해 (陰害)' 등으로 지칭되는 일련의 정보공작에서 여실히 드러난바 있다.

이에 대한 언론의 반감 (反感) 이나 저항이 만만치 않았던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문민시대가 개화 (開花) 된 오늘날 그 주도세력임을 자처하는 신한국당의 대통령후보 경선과정에서 '괴문서' '음해' 란 말들이 난무 (亂舞) 하고 인격과 자질을 의심스럽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그것을 보도하는 매스컴의 자세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크게 두가지로 집약될 수 있을 것같다.

첫째는 '괴문서' 나 '음해' 에 있어 시대상황의 차이에서 오는 이동 (異同)에 대한 인식이 있는가의 여부고, 둘째는 이른바 대권주자 (大權走者) 또는 예비주자 (豫備走者)에 대한 '프라이버시' 와 명예훼손의 한계는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전자 (前者)에 관해 말한다면 신한국당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비록 구태 (舊態)에 속할 것일지언정 이른바 관권 (官權)에 의한 공작차원이나 탄압이라고 몰아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닌 것같다.

그리고 후자 (後者)에 관해 말한다면 '괴문서' 나 '음해' 의 내용과 실체는 도리어 소상히 밝히는 것이 절실하다고 해야할 것 같다.

지난날의 '괴문서' 나 '음해' 의 망령 (亡靈) 을 떠올리고 '진실' 을 외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권을 지향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든 그 개인과 가정, 그리고 과거의 행적에 대한 모든 것이 철저히 검증돼야 할줄 안다.

이것은 다시 말해 대권주자에겐 프라이버시가 없거나 없어야 한다는 뜻이고, 명예훼손도 그 적용 범위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앙일보를 비롯한 유수한 신문의 보도를 보면 '음해' 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하고 있을 뿐더러 궁금증만 더하게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보도 태도는 마땅히 지양해야 하며, 앞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대권주자의 모든 정보, 특히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지난날과 차원을 달리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규행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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