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 시시각각

우리에게 주는 오바마의 충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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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바마의 취임 연설문을 다시 읽었다. 그가 지난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이 어쩐지 우리에게 하는 충고처럼 들린 까닭이다. 그제야 취임사 역시 그랬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우둔한 머리는 수족을 수고롭게 하는 법이다. 이전의 화려한 수사 대신 현실적 무게가 실렸다는 연설문을 다시 뒤졌다.

오바마는 신문에 “낡은 이념투쟁 대신 위기를 극복할 묘수(good ideas)를, 편협한 당파주의 대신 목적의식(a sense of purpose)을 가져야 한다”고 썼다. “그런 워싱턴의 나쁜 습관들이 발전을 가로막게 놔두느냐, 아니면 하나로 뭉쳐 운명과 싸우느냐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인들은 경제 회복에 몇 달 아닌 몇 년이 걸릴 것이란 걸 알고 인내할 수 있지만, 경제 회복을 방해하는 정쟁(政爭)에는 인내심이 없다”고 했다.

 워싱턴을 여의도로, 미국인을 한국인으로만 바꾸면 딱 우리 얘기 아닌가. 지난 몇 달 동안 우리가 겪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겪어야 할지 모르는 모습 아니냔 말이다. 신문에 쓴 글은 주로 경제와 관련된 내용이다. 취임사는 정치·경제는 물론 사회·문화·과학기술로까지 외연을 확장하는데 그것 역시 고스란히 우리 얘기다.

오바마는 “미국 정치가 너무 오랫동안 거짓 약속과 진부한 교리들에 얽매여 왔다”고 전제했다. 그걸 ‘어린애 같은 짓(childish thing)’이라 불렀다.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돼 논란이 됐던 대목이지만 내 눈엔 우리나라 정치의 치부를 꼭 집어낸 것처럼 읽힌다. ‘내가 어렸을 때 어린애처럼 말하고 이해하고 생각했는데, 장성해서는 어린애 같은 짓을 버렸노라’는 고린도전서의 구절처럼 이제 우리 정치도 ‘어른스럽게’ 행동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른스러워지기 위한 각론으로 들어가보자. 오바마는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가 아니라, 정부가 기능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선언한다. 정부의 기능이란 다른 게 아니다. “살 만한 수입의 일자리를 얻게 해주고,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며, 품위 있게 퇴직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다. 결국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얘기다. 이데올로기 논쟁보다 파이를 키우는 게 정부가 우선 할 일이라는 거다. 노자가 말한 대로다. “마음은 비우고 배를 채워라(虛其心實其腹).” 지난 정권의 실패가 그걸 몰랐기 때문 아니던가.

그렇다고 부가 전부요, 시장이 만능이라는 건 아니다. “문제는 시장이 선인지 악인지가 아니다.”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는 게 시장이다. 부를 창출하고 자유를 확대하는 데 시장을 따를 게 없지만 감시의 눈이 없으면 통제불능이 된다는 걸 이번에 보지 않았느냐는 거다. 그리고 단언한다. “국가가 부유한 사람들만 위하면 오랫동안 번영할 수 없다.” 이 정권이 진작 들었으면 좋았을 금언이다. 출범하자마자 그토록 호된 시련을 겪었던 게 부자 정권이 아니란 믿음을 주지 못한 탓 아니었던가.

오바마는 “편의를 위해 법치주의와 인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한다. 테러 용의자에 대한 인권유린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얘기지만 사회 곳곳에서 ‘법치’와 ‘인권’이 충돌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선 또 다르게 들린다. “지금은 대담하고 신속한 행동이 요구되며, 그렇게 할 것”이라는 선언도 미국의 기침에 앓아눕는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말이다. “신성장동력을 위해 과학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각급 학교를 개혁해 시대 요구에 부응할 것”이란 각오도 우리 실정과 한 치 어긋남이 없다.

 아전인수(我田引水)란 지적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디든 물이 있다면 끌어와야 한다. 논바닥이 갈라지게 놔둘 순 없는 일이다. 널린 교훈도 눈뜬 자의 몫이고 깨달음은 구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크게 뜬 눈으로 오바마의 연설문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걱정 마시라. 인터넷에 가면 우리말로 번역된 것도 있다.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