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아그룹의 부도방지 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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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기아그룹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부도방지협약에 따라 이 그룹에 부도방지조치를 발동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서 깊은 자동차생산업체인 기아산업을 위시해 아시아자동차.기아특수강.㈜기산 등 18개 회사가 여기에 포함돼 있다.

지금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 기업들을 강타하고 있는 부도.도산폭풍이 시험하고 있는 것은 경쟁력이다.

생산품의 품질.생산 코스트.판매시장의 안전성.재무구조, 이 모든 면의 경쟁력에서 견뎌내지 못하는 기업들이 가차없이 쓰러지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 기업의 최대 약점은 재무구조다.

한보.삼미, 그리고 진로.대농 등이 모두 재무구조의 취약 때문에 이미 쓰러졌거나 지금 매우 힘든 회생노력을 진행중이다.

기아그룹 18개사의 자기자본은 2조3천6백억원인데 비해 부채는 12조2천3백억원이다.

빚이 많은 회사는 불경기에는 특히 견딜 힘이 없다.

우리 대기업들은 불행하게도 빚으로 회사 수도 늘리고 위험성 높은 새 사업에 투자도 해왔다.

설상가상 (雪上加霜) 으로 언제라도 상환을 요구해 올 수 있는 단기자금이 부채의 큰 부분을 이루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액 (GDP) 이 1만달러를 넘어서면서 생산 코스트는 거품현상을 일으키며 올라갔다.

그러나 생산품의 종류나 품질은 특별한 혁신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경쟁력의 이런 열세 (劣勢) 는 재무구조를 악순환적으로 악화시키고 있다.

기아그룹의 모기업인 기아자동차가 ㈜기산 등 계열사의 수익성악화 때문에 자금압박을 받게 된 것도 넓게 보아 이런 악순환의 예다.

게다가 이런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종금사 등으로부터 자금회전기피와 대출금회수를 당해왔다.

2년전부터 중소기업을 시작으로 이제는 대기업그룹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리고 있는 부도.도산폭풍은 이미 전국의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삼는 도미노 현상이 돼버렸다.

다음 차례는 어떤 기업이 될지 모른다.

한국경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획기적 구조조정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할 시점에 이미 이르렀다.

두달간의 회생 (回生) 말미를 주는 은행들 사이의 부도방지협약으로는 어림도 없게 됐다.

지금대로 방치하다가는 은행마저 부도.도산의 회오리 속에 파묻히는 일이 생길 불행한 확률만 계속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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