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公職이 사유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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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통령 해외순방 수행중 무단이탈로 면직된 전대통령비서관을 정부 투자기관 이사장으로

내정한 것은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무원칙한 인사다.

소위 민주계 가신(家臣)출신인 박영환(朴榮煥)전공보비서관은 지난번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유엔및 멕시코 방문을 수행했다가 도중에 자기 멋대로 귀국하는

전례없는 근무이탈로 큰 파문을 일으킨 사람이다.이런 사람을 근로복지공단산하의 산재의료관리원 이사장으로 내정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자리엔 이미 다른 사람이 내정돼 취임식 일정까지 결정돼 있었는데 이를 보류시키고

朴씨를 임명키로 했다니 어안이 벙벙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공직기강 문란으로 면직된 사람을 불과 며칠만에,그것도 경험도 없는 다른 공직에 기용하는 이런 인사가 세상에 있을 수 있는가.

이런 일은 권력을 쥔 세력이 공직을 자기네의 사유물(私有物)처럼 생각하고 같은 패거리끼리 나눠먹는다는 의식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朴씨의 이사장 내정은 즉각 취소돼야 하고 이런 엉터리 인사를 주도한 관련공직자에 대해서도 엄중한 경고와 문책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곳도 아닌 대통령비서실에서 기강문란과 전례없는 일탈(逸脫)현상이 잇따라 일어나는 것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홍인길(洪仁吉).장학로(張學魯)사건에 이어 무적(無籍)근무자라는 희한한 일이 있었는가 하면 김현철씨에게 기업의 돈심부름을 한 비서관까지 있었다.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보도 듣도 못한 일이 金정부의 비서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현상이 집권세력 내부에 권력이나 공직을 담당할만한 자질과 수준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 있기 때문이거나 비서실의 기강과 질서에 큰 구멍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임기말의 어려운 시기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기강을 잡고 국정을 챙겨야 할 비서실에서 이런 상상밖의 난조와 일탈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정말 우려할 일이다.지금부터라도 비서실은 자세를 가다듬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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