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과 같은 방식으로 어린아이 조사는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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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국들은 성폭행 피해 아동들에 대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조사 과정부터 법정 진술에 이르기까지 아동의 눈높이에 맞춘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미국은 경찰에 아동 성폭행 피해 사실이 접수되면 ‘아동 후견 센터’를 중심으로 전문가 팀이 구성된다. ‘아동의 진술을 듣고 분석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전문가들은 피해 아동과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긴 시간을 쓴다. 아동이 숫자·날짜 개념이 있는지 우선 파악한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질문하기 위해서다. 이후 구체적인 조사에 들어간다. 그림과 인형, 컴퓨터 게임이 사용된다. 부모 등 주변 환경도 조사한다. 전문가들은 이 모든 과정을 녹화해 검찰과 법원에 제출한다. 판사와 검사는 이 녹화 테이프를 반드시 보도록 의무화돼 있다. 일본의 경우는 법정에서 피해자 측이 직접 피고인(가해자)에게 질문할 수 있다. 법원이 ‘심문할 권리’를 주는 것이다. 피해자 측은 성폭행 피해 아동의 가족과 변호인이다. 피해자 측은 법정에서 성폭행 사실뿐만 아니라 배상에 대한 지불 능력까지 물어볼 수 있다. 지난달 21일 경찰청과 법정심리학회는 ‘피해 아동에 대한 조사 기법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때 미국과 일본의 아동 성폭행 전문가 4명이 초대됐다. 리쓰메이칸대 이부스키 마코토 교수는 ‘형식적인 법 평등주의’를 경계했다. 그는 “성인과 똑같은 방식으로 어린아이를 조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불평등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전문가 참여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탄생했다. 국립 아동후견센터의 린다 코디스코 스틸 박사는 “아이들의 발달 상태, 정신적 상황을 판단해 사건에 접근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피해 아동에 대한 조사는 치료와 반드시 분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는 ‘조사와 치료를 구분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다.

강인식·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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