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허점있는 法 차라리 폐지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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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출국세(관광진흥개발기금) 징수와 청소년보호법이 시행 첫날부터 주관부처의 준비소홀로 차질을 빚었다.지난 3월 제정된 청소년보호법은 아직까지 시행규칙이 마련되지 못해서,또 출국세는 제도상의 허점 때문에 표류상태라고 한다.법은 효력을 발생했는데 이를 집행하는 정부가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해 시민생활에 혼란을 초래했으니 간과할 수 없는 사태다.

시민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고 특정행위를 강제적으로 제한하는 법률은 강력한 행정력이 뒷받침되더라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예다.그런데도 주관부처인 문화체육부는 법만 공포해놓고 시민들에게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방치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정부 스스로 법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졸속행정에 시민들은 분통이 터질 뿐이다.

아무리 임기말의 행정공백이 심각하다고는 하지만 애써 만든 법의 집행까지 방치한다면 이는 정부의 존재이유를 정부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문체부는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문제가 된 출국세는 도입단계부터 그 타당성과 실효성을 놓고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았다.문체부는 시행혼선에 대해 비난여론이 일자 직원들을 김포공항에 내보내 기금납부 여부를 확인토록 했다고 하나 이 정도의 조치로 해결될 사태가 아니다.

과연 누가 관광목적으로 출국을 하는 것인지 구분할 방도가 마땅치 않은 등 법규정 자체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또 관광출국자가 이용하는 공항이 어디 김포공항 뿐인가.주관부처조차 관리하기 어려운 법이라면 이 기회에 차라리 폐지를 검토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같은 사태는 비단 특정부처에만 국한된 일이 아닐 것이다.임기말에 대선정국이 겹쳐 그렇지 않아도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다.정부는 공무원들의 근무태세를 철저히 점검해 임기말 행정공백이 심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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