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국산 중고품 개도국서 '칙사 대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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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교회' '서울대-고속터미널,289번' '내 탓이오'. 6월 시장개척을 위해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페루의 수도 리마를 방문했던 중소기업 선우영길(鮮于永吉.47)사장은 이같은 한글표기가 문짝.뒷유리등에 쓰인 채 도심을 운행하는 국산차를 보고 의아해 했다.

페루는 우리나라 중고차의 주요 수출국중 하나. 수입한 중고차에 대한 변경을 가급적 줄이려는 현지인들의 심리때문에 한국에서 차량에 쓴 글씨나 각종 광고 부착물까지 붙인 채 돌아다니는 것이다. 鮮于사장은“한국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좋은 편이어서 한글 부착물을 뗄 이유가 없다는 현지인의 설명을 듣고 가슴 뿌듯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개도국에서 인기가 높은 국산 자동차와 타이어는 물론 의류.기계.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중고품 수출이 최근 활발하다.올들어 신품(新品)수출은 썩 좋지 못하지만 중고품은 어엿한 수출품목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것이다.

중고품이다보니 선진국이 아니라 주로 동남아.중남미.러시아등 개도국으로 나간다.수출창구는 대부분 중소 무역상들이다.

중고품 수출이 이처럼 늘어나는 것은 우리나라는 소득및 생활수준 향상으로 상품 사용주기가 갈수록 짧아져 중고품이 남아도는 반면 경제수준이 낮고 생필품이 부족한 후발 개도국의 경우 신품보다는 값싼 중고품에 대한 수요가 늘기 때문이다.

중고품중 최대 수출품목은 자동차.2일 한국자동차매매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올들어 3월말까지 7천5백35대가 팔렸다.지난해 동기보다 2백78%나 늘어난 물량이다.

차종별로는 화물차.특수차가 가장 많고 승용차.승합차순으로 수출된다. 중고차 수출물량은 95년까지 매년 40%이상 늘어나다 지난해에는 엔저등의 영향으로 9천1백9대가 팔리면서 95년보다 무려 57%나 줄었다.올들어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는 것은 동남아.중남미의 경제가 상승세를 보이는데다 엔강세로 수출단가가 좋아졌으며,페루등 일부 지역의 수입금지조치가 풀린 때문이다.최대 수출국가는 베트남.이어 터키.칠레.러시아.필리핀이 뒤를 잇는다.

올해 5월말 현재 우리나라의 대(對)캄보디아 수출액 2천1백만달러 가운데 중고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80%.신품보다 훨씬 많다.의류.자동차.오토바이.가전제품등 종류도 다양하다.의류는 재고가 아닌 헌옷으로 1백㎏단위로 수출돼 현지 수입업자가 이를 분류해 세탁.수선등을 거쳐 판다.겨울옷은 태국.베트남 등지의 고산지대로 재수출된다.지난해 캄보디아에 수출한 헌옷은 3백22만달러어치로 95년의 43만달러어치보다 6배이상 늘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윤광덕(尹光德)프놈펜무역관장은“현지 소비자들이 중고차의 한글상호가 지워지면 다시 칠하고 교련복에 달린 명찰을 그대로 달고 다닐 정도로 우리 중고품의 인기가 높다”면서“향후 5년쯤 우리 중고품 수출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중고 기계류 수출도 활발하다.대우는 95년 필리핀에 중고 선반을 처음 판매한 이래 그동안 12대를 팔아 20%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섬유.제지.화장지 업체들도 20~30년된 중고 기계를 대당 4백만달러 정도에 동남아.중국 등지로 팔았다. 홍병기.신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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