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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선생님! 복도에 누워있어요. 빨리 와보세요."
"선생님, 저요! 저요! 제가 데려다 줄게요!"
"선생님~ 절 보고 웃었어요. 너무 예뻐요. 히히."
"선생님, 선생님 책상에 있는 것 막 만져요."

이 말이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죠? 하지만 저희 3-1반 아이들은 첫 번째 문장만 봐도 무슨 이야기인지 단번에 맞출 수 있답니다.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듣게 되는 네 가지 말들. 어느새 저희 반 아이들의 침 튀기며 외치는 그 말들이 정겹게 들리게 되었답니다.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말들인지 궁금하시죠. 이제 공개할게요. 네 가지 말 모두 저희반 승희(가명)와 관련된 말들입니다. 승희는 이효리의 눈을 가지고 있어요. 웃을 때 정말 똑같거든요. 키도 크고 힘도 무척 센 편이죠.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더듬거리며 말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고 집중력도 없어서 일반학급 학생들과 공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승희(가명)는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어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이랍니다. 하지만 저희 반 아이들은 마치 친 동생처럼 승희를 예뻐해요. 많은 아이들이 서로 자기가 짝을 해야 한다며 손을 '번쩍' 들어 짝하기 위해서는 경쟁률을 뚫어야 하고, 작은 일이라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걸 즐겨하며 쉬는 시간엔 승희와 놀아주기 위해 승희 주변을 맴돌기도 한답니다. 그러다 승희가 '배시시' 웃거나 박수를 쳐주기라도 하면 자길 좋아하는 거라며 아이들은 저에게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죠.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는 쉬는 시간 아이들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미소가 지어질 때가 많답니다.

특수 교육 관련 연수 중 교수님께서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특수 교육 전공 교수가 수업 연수차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어, 아저씨 장애인이시네요?"
하며 교수님 옆에 다가 왔는데 그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게 뭐가 감동이지?'하며 의아해하고 있는 우리에게 교수님께서는 다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이들은 자기 곁에 다가 오기는커녕 '병신이네'하며 피하기 일 수 였는데 이젠 병신이 아닌 장애인이라는 단어로,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던 이방인에서 함께 하는 조금 다른 사람으로 아이들이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다며 이런 변화를 가져온 '교육의 힘'의 대단함에 대해 덧붙이시더군요.

교수님의 말처럼 통합 교육(특수아가 일반 학급에서 일반 아이들과 함께 수업하는 것)이 시행되고 교육 과정 상에서도 장애인 관련 계기 교육을 중요시 하게 됨에 따라 초등학교 아이들의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예전과는 참 많이 달라졌어요. 필자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특수반'이라고 하여 지체장애, 청각장애, 시각장애 등을 가진 아이들만 수업하는 교실이 따로 있긴 했지만 함께 생활하거나 수업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도 적었죠.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특수반 아이들은 언제나 놀림감이 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1994년 통합교육법 실행 이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국어와 수학 등의 주지교과를 제외한 교과에 일반 학생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에 함께 참여하게 됨으로서 우리의 아이들은 장애학생들과 어울리며 생활하고 있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애를 가진 아이도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의 도움과 배려가 필요한 친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덕분에 교실 밖에서도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바뀔 수 있었고요.

Bailey와 Winton(1987)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통합교육 이후 장애학생들에게는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 다양한 어휘습득, 의사소통능력향상이 나타났으며 비장애아동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부적절한 행동이 감소되어 교육적 성과가 높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비장애아동들에게서는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형성되어 다른 사람을 도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어렸을 때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배우는 기회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통합 교육'에 대한 인식은 아이들만큼 좋지는 않은 것 같더군요. 학부모들 중 몇 몇 분은 내 아이가 장애아동과 어울리게 되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계시더군요. 어쩌면 통합교육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이기에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죠.

이번 칼럼을 통해 많은 연구결과와 비록 일화에 불과하지만 저희반 아이들의 이야기로 대변하는 교육현장의 모습을 통해 장애를 가진 아이와 함께 생활하며 자란 아이일수록 장애인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존중의 태도를 키울 수 있다는 것과 장애아동을 대하는 부모의 편견과 차별이 아이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우려의 말을 하고 싶었답니다.

겨울방학이 끝나가는 요즘 밀린 방학과제를 두고 아이와 씨름하기보다 내 아이와 세상을 차별의 잣대가 아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영화 한 편을 보며 함께 이야기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요? 정신지체인 아빠가 정상인 딸과의 사랑이 눈물겨운 영화 I AM SAM(2001), 주인공이 실제 다운증후군이어서 더 유명한 제8요일(1995), 10대 소년이 정신지체이자 자폐아인 동생을 도와주며 성숙해 가는 이야기를 다룬 길버트 그레이프(1994) 세 편의 영화를 추천하며 아이들이 좋은 영화와 함께 장애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뜻 깊은 방학으로 마무리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김범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