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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어디서나 통하는 입맛 접대 … 한식은 ‘외교 신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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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해 10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에서 열린 ‘다이내믹 코리아 2008’ 행사. 한식과 한국산 농산물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행사에서 재미 교포 요리사들이 외국인들에게 비빔밥을 선보이고 있다. 작은 유리잔으로 된 시식 용기에 여러 가지 국산 야채를 담은 뒤 고추장 양념을 얹어 참가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제공]

 외교관들에게는 밥 먹는 것도 업무의 연장이다. 공식 협상으로 풀리지 않는 난제들이 식사 테이블에서 풀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고유의 맛과 멋이 담긴 한식은 훌륭한 외교의 수단이다. 국력의 요소로 군사력과 경제력 못지않게 문화의 힘과 매력(소프트파워)이 강조되는 시대엔 더욱 그렇다.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109개국 153개 공관에 파견된 우리 외교관들은 한식 세계화의 첨병인 셈이다.

◆한식은 훌륭한 외교 자원=2006년 6월 이태식 주미대사는 마이크 조핸스 미 농무장관을 관저로 초대했다. 미국산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발견돼 수입 물량 전체를 반송한 일로 한·미 관계가 경색됐던 때였다. 이 대사는 불고기 등 한식을 차린 식탁에서 조핸스 장관에게 한국 입장과 정서를 설명했다. 당시 농무관으로 배석했던 김재수 농촌진흥청장은 “험악하던 분위기가 만찬을 계기로 누그러졌다”며 “미국의 무역 대응 조치를 막는 데 한식 접대가 일조한 셈”이라고 회고했다.

양성철 전 주미대사는 재직 당시 관저에서 직접 담근 김치를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에게 몇 차례 선물로 보냈다. 파월 장관이 1970년대 동두천에서 주한미군 대대장으로 근무한 시절부터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었기 때문이다. 파월이 뜻밖의 선물에 감사를 표시해 왔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식 접대를 외교 자원으로 활용하는 건 주일 대사관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류 붐이 거센 2004년 이후엔 관저 접대가 더욱 빈번해졌다. 주일 대사관 근무 경력을 가진 외교부 간부는 “아소 다로 총리는 현직 외상 재직 중일 때를 포함해 여러 차례 우리 대사관저로 와서 식사를 하며 친분을 돈독히 했다”고 말했다. 파나마 대사를 역임한 문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산 홍삼의 위력으로 파나마 정부가 발주한 구급차 40대와 이동 진료차 등 300만 달러어치의 수출 실적을 올린 일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통령 겸 외무장관이 감기가 들었다는 말을 듣고 홍삼을 선물한 적이 있는데 어느새 파나마 정계 인사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홍삼을 구해 달라는 부탁을 여러 차례 받았다”며 “그렇게 맺은 인맥으로 외교 활동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재외 공관은 한식 세계화의 전진기지=김성은(46) 외교부 통상진흥과장은 “캐나다 정부가 주관한 오타와 튤립 축제기간에 한식 부스를 별도로 운영한 것을 비롯해 일본·브라질·홍콩 등 지난해 20여 곳의 재외 공관에서 한식 홍보 행사를 열었는데 준비한 음식이 일찌감치 동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김 과장은 “올해는 멕시코·콜롬비아·두바이·이집트 등으로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홍우(54) 농림수산식품부 식품산업진흥팀장은 “농림부와 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무역협회 등이 지난달 협의회를 열고 한식 수출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며 “2012년 농식품 100억 달러 수출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런 점은 개선해야=외교관들은 그러나 한식 세계화를 위해선 과제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최형찬 재외공관담당 과장은 “일본은 1970년대부터 외무성이 정책적으로 대사관 전속 요리사를 파견해 일식 세계화에 큰 보탬이 됐다”며 “우리는 예산의 제약으로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한식 요리책을 외국어로 만들어 전파하는 것도 시급하다. 한 외교관 부인은 “한식을 맛본 외국인이 집에서 만들어 먹고 싶으니 요리책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도 대답을 못해 무안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한국 음식에 쓸 재료 구입이 힘든 것도 고충이다. 대사를 지낸 한 외교부 간부는 “선배 외교관의 부인이 70년대 유럽의 한 야채가게에서 무청을 사러 갔다가 상점 주인에게 ‘토끼를 많이 키우나 보죠’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일화도 있다”며 “최근 한식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수요도 느는 만큼 농수산물유통공사 등을 활용해 한식 재료 보급망을 개척하는 것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예영준·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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