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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칼럼>군중대회 왜 안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71년 군부정권 마지막 직선이었던 7대 대통령선거때 박정희(朴正熙)후보와 김대중(金大中)후보의 대결은 팽팽했다.두 후보의 유세대결에 얼마나 많은 청중이 모이는가가 큰 관심거리였다.청중숫자가 너무 민감한 문제가 되자 몇천명,몇만명이니 하는 추정대신 청중이 차지한 평수(坪數)가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넓이 얼마의 운동장 몇%를 메웠다는 식으로 청중의 규모를 간접표현하는 것이다.

당시엔 장충단공원이 가장 큰 유세장이어서 이곳의 청중대결이 두 후보 인기측정의 바로미터가 되었다.金후보가 많은 군중을 동원하자 그 다음에 유세한 朴후보측은 서울시내 각 동네에 그들이 메워야 할 장소까지 지정한 동원할당령을 내렸었다.항공사진에는 당연히 朴후보의 연설때 모인 청중들이 훨씬 넓게 포진한 것으로 나타났었다.

군부정권후의 첫 직선이었던 87년 대통령선거때도 양상은 비슷했다.양金1盧가 차례로 여의도유세에서 군중동원경쟁을 했었다.양金유세에 모인 군중수는 백만까지 부풀려졌었다.맨나중에 한 盧후보 역시 서울의 동 조직을 동원하고 일부 기업들에 거의 할당하다시피 했다. 여의도로 가는 두 다리까지 흘러넘치도록 동원청중을 배치하는 수법으로 역시 군중의 규모를 과시했다.

이런 대규모 군중대회가 수십억씩 돈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에 돈드는 선거의 원흉으로 지목되자 여야는 일제히 이번 임시국회에서 대규모 연설회 폐지를 정치개혁의 최우선과제로 삼고 있다.마치 대규모연설회만 폐지되면 당장 선거가 깨끗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본말(本末)이 뒤집힌 것이다.왜 야당은 굳이 군중대회를 열어야 했고,이에 기(氣)가 꺾일세라 여당이 강제동원군중대회를 여는지 그 이유가 중요한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유세장의 청중숫자가 바로 민심(民心)의 크기라고 해석되어지는데 있다.3대 대통령선거때 야당후보 신익희(申翼熙)씨가 한강 백사장에 모은 수십만 군중이 그런 민심으로 이해되었다.거슬러 올라가면 해방직후 좌.우익의 세(勢)대결이나 남한 단정론(單政論)을 폈던 이승만(李承晩)박사가 호남에서부터 북상하면서 유세를 펼친 것도 다 민심의 지지를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군중대회는 가장 소박한 민심의 표출방식인 것이다.

야당이 때론 상당한 자금부담을 겪으면서까지 군중대회를 기도한 것도 그런 민심의 위력을 보이려 했기 때문이었다.익명성이 높은 군중대회는 마음속의 정부비판자들이“몸부조”로 간접저항의 표시를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그런 공감대 위에서 광주.부마(釜馬)항쟁,6.10민주항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대규모의 군중대회에 있는게 아니다.억지민의를 조작하는 강권적 권력,탈법적인 금전살포를 가능케하는 법의 허점들이 문제이며 그것을 악용하는 저수준의 정치의식이 문제인 것이다.

투표일이 가까워지면 정당의 당원숫자가 거의 1천만명선으로 늘어나는 것은 정당의 정책보고회 또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통비니 점심값이니 해서 돈을 뿌리고 향응을 제공하는 탈법의 방편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대규모 군중대회는 안되고 소규모 군중대회는 된다면'소규모'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수천만원의 돈도 대가성이 없다고'떡값'으로 간주되는 법운용속에서 정치자금법이란 무엇인가.진짜 선거개혁이 이뤄지려면 이런 문제들이 먼저 검토되어야 한다.선거전 일정기간부터 후보들이 쓰는 돈,정당이 집행하는 모든 경비들이 샅샅이 기장(記帳)되고,그것이 제대로 실사되는 장치를 갖는다면 문제가 달라질 것이다.선관위의 고발이 모두 묵살되는 것이다.

그런데 제도권내의 여야정당들은 그들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이런 탈법의 조항들은 그대로 넘어가버리고 엉뚱하게 겉으로 드러난 군중대회만 규제하려 들고 있다.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TV토론 몇번으로 후보의 자질을 검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안이하다.

국민의 대통령은 국민들과 악수하고,몸을 부딪치고,설전을 벌이면서,국민속에서 선택되지 않으면 안되며 선거개혁은 국민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김영배 뉴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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