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갈등 해결은 우리가 딱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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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빌리지센터의 외국인 ‘동장’ 3명이 모처럼 자리를 함께했다. 중국인 유암(연남센터), 캐나다인 폴 핫세(이태원·한남센터), 이탈리아인 크리스티나(역삼센터, 왼쪽부터)는 이구동성으로 “반응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 “우리 센터가 최고”라고 자랑한다. [정근영 인턴기자]


 “감사편지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떨렸어요.”(유암·36·여·중국)

“제가 정말 중요한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행복해요.”(크리스티나·28·여·이탈리아)

“반응이 이렇게 좋을 줄 미처 몰랐어요.”(폴 핫세·31·캐나다)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이태원·한남 글로벌빌리지센터에 유암(연남)·크리스티나(역삼)·폴 핫세(이태원·한남) 등 ‘외국인 동장(센터장)’ 세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월 200만원 정도를 받는 1년 계약의 6급 비전임직 대우를 받고 있다. 하루 4시간씩 일하는 것으로 계약했지만 매일 아침 일찍 나와 해질 무렵 퇴근한다.

글로벌빌리지센터가 외국인의 불편을 해결해주는 사랑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1월 말 마포구 연남동을 시작으로 현재 이태원·이촌·서래·역삼 등 서울에 5개 센터가 있다. 외국인 센터장과 한국인 직원 2명이 매주 100~300건의 전화 또는 방문을 통해 외국인들의 애로를 상담해주고 있다.


◆‘다리 역할’에 보람=‘1호 외국인 동장’이 된 유암 연남센터장은 “이국 땅에 온 동포들이 한국 사회와 문화에 잘 적응하도록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지난 1년을 회고했다. 한의사였던 그는 중국 유학생이던 남편과 결혼해 6년 전 한국 땅을 밟았다. 간단한 서류 하나를 떼기 위해 동사무소를 찾아서도 말이 통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 한국말을 못하는 두 딸은 유치원에서 ‘왕따’가 됐다. 센터장 모집에 선뜻 지원한 것도 “경험을 살려 한국인과 중국인에게 양국 문화를 올바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유암 센터장은 사소한 문화 차이에서 갈등이 생긴다고 지적한다. "어떤 부부가 찾아왔어요. 중국인 여성과 결혼한 한국인 남편이 아내의 식사 습관을 이해하지 못해 오해가 쌓인 거죠. 중국인들은 밥그릇을 들고 먹는데 한국에선 복 달아난다고 생각하잖아요. 조금만 이야기하면 오해가 풀릴 수 있는데 한국인들은 ‘한국 식’ ‘우리 식’대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크리스티나 역삼센터장은 이탈리아에 성악을 공부하러 온 남편에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쳐주다 사랑에 빠졌다. 사랑만 믿고 한국으로 건너와 결혼식을 올렸다. KBS TV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며 유명인이 됐다. 『so Hot! so Cool! 크리스티나처럼』이라는 제목의 책도 냈다. “센터에 자주 오는 외국인 60여 명과 봉사동아리를 만들었어요.” 크리스티나는 동아리 회원들과 한 달에 한 번 보육원을 찾는다. “센터가 비좁을 정도로 사랑이 넘치게 하겠다”는 게 그녀의 다짐이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찾는 이태원센터의 핫세는 2003년 영어강사로 한국을 찾았다. “간단한 한국말을 몰라 너무 힘들었다”며 웃는다. 쓰레기를 함부로 내놓아 이웃들에게 혼난 것도 여러 차례. 차가 고장나거나 집주인과 마찰이 생길 때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없었다. 그러나 언어장벽을 극복하면서 한국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자칭 ‘코리아 홍보대사’인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응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고 입을 모으는 이들에게 ‘최고의 센터’를 꼽아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마주 보며 동시에 입을 뗐다. “당근(당연히) 우리 센터죠.”

◆문화센터에서 부부 클리닉까지=일본인 주재원 가족이 많이 사는 이촌센터는 한국 문화를 알리는 창구가 되고 있다. 센터 직원 이혜영씨는 “일본인 주부들은 교육열이 높아 아이를 위해 한국어와 문화를 배우겠다는 욕심이 많다”고 귀띔한다. “재미있는 문화 강좌가 있느냐”고 묻는 전화만 하루 5~6통씩 걸려온다고 한다.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1300여 명이 살고 있는 연남센터엔 최근 이혼 상담이 부쩍 늘었다. 센터 직원 권소정씨는 “언어장벽으로 갈등을 겪는 결혼 이민자들에게 ‘부부 클리닉’ 역할도 한다”고 전했다.

외국계 기업이 많이 있는 역삼센터에는 취업비자를 받으려는 외국인의 문의가 이어진다. 서래·이태원·한남 센터에는 인터넷 설치, 휴대전화 개통 등 생활 관련 문의가 주를 이룬다. 1주일 동안 들어오는 200여 건의 민원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외국인만 센터를 찾는 건 아니다. 프랑스어·중국어 등 각종 외국어 강좌를 들으려는 동네 주민의 발길도 잦아지고 있다. 보통 한 달에 1만원(주 2회)으로 생생한 생활 외국어를 외국인에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올 초 이태원센터에서 열린 ‘미술도예강좌’에 딸과 함께 참석한 주민영(36·중곡동)씨는 단골이 됐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센터를 통해 한국인 친구를 사귄 인도인 샨티(39·여)는 “인도요리 강좌를 열어보고 싶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임주리 기자 , 사진=정근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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