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 쿠바 ‘미국 MD 맞대응’ 손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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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AP통신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카스트로 의장의 러시아 방문으로 양국 관계가 새 장을 열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쿠바에 2000만 달러 상당의 차관과 식량 원조(2만5000t)를 제공하기로 했다. 양국은 또 교통·무역·교육·문화 등 36개 분야에서 교류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쿠바 해역에서 진행 중인 석유 시추사업에 큰 관심을 보여 왔던 러시아는 여기에 투자자로 참여하게 됐다. 외신에 따르면 쿠바에는 약 200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정학적으로 쿠바는 미국을 견제하는 중남미 전진기지로서의 가치가 크다. 미 본토에서 가장 가까워 러시아의 중남미 전략을 떠받치는 핵심 요충지가 됐다.

러시아는 2002년 폐쇄한 쿠바의 루르데스 레이더 기지를 재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레이더 기지는 미국 본토 전역을 감시망으로 두고 운용됐다. 카스트로의 러시아 방문은 1986년 친형인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방문 이후 23년 만이다. 지난해 11월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쿠바를 찾은 데 대한 답방 형식이다.

양국 관계는 1991년 옛 소련 붕괴 이후 소원해졌으나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전 대통령(현 총리)의 쿠바 방문 이후 완만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오일 달러로 국부를 키운 러시아는 최근 미국의 ‘뒷마당’인 중남미에 반미 벨트를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러시아의 ‘앞마당’인 동유럽(체코·폴란드)에 미사일방어(MD) 기지를 설치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대한 맞대응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10월 연합 군사훈련 명목으로 냉전 종식 이후 처음으로 카리브해에 해군 함대를 파견했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핵추진 순양함과 구축함으로 구성된 전투 함대였다. 앞서 9월엔 장거리 전략폭격기 Tu(투폴레프)-160 두 기를 베네수엘라에 보내 양국 간 군사적 밀착을 과시했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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