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본 교과서의 하늘 가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손바닥으로 하늘 가린다고 했다.일본인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종군위안부 문제다.설령 몰랐다 해도 피해당사국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폭로하고 호소도 했다.유엔 인권위원회가 자세한 현지조사를 거쳐 보고서까지 작성했고 이에 대한 구체적 입장정리까지 함으로써 이젠 세계가 다 아는 반인권의 대표적 폭력사례로 꼽히고 있다.그런데도 일본은 기회만 있으면 이를 숨기거나 축소시키려고 한다.대국을 자처하는 일본이 아직도 소국(小國)국수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안타깝게 생각할 뿐이다.

일본 역사교과서 파문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그때마다 일본 정부는'이웃 여러 나라들과의 우호를 배려'해 교과서 검정에 신중을 기한다는 다짐을 해왔다.그런데도 당장 내년 고교교과서에 들어갈 종군위안부의 기술은 93년 수준에도 못미치는 후퇴를 보이고 있다.93년 이미 당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일본 관방장관은 종군위안부를'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이라고 밝힌 바 있다.그런데도 일본 정부는'일본군 간여사실은 조사중이니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검정지침을 내려 일본군의 강제연행 사실을 삭제하거나 모호한 표현으로 변질시켰다.'10만 또는 20만명의 종군위안부'도'다수'라는 표현으로 바꿨다.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전쟁책임과 보상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해결이 끝났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역사교육은 중요하다.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역사교육은 또다른 잘못을 거듭할 수 있다.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반성하는 자료로서 제대로 된 교과서를 쓰는 모습을 보여야 일본이 아시아의 진정한 우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