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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000,000,000Z$≒4만1370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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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호 22면

1 1934년 발행이 중단된 미국 1000달러 지폐. 현재 가치로 단순 계산하면 약 137만9000원. 2 노르웨이 1000크로네. 49년부터 발행되고 있으며 ‘절규’의 화가 뭉크가 새겨져 있다. 약 20만1000원. 3 스위스 1000프랑. 약 119만4000원으로 일상 거래에서 사용되는 세계 최고액권. 4 73년부터 발행된 1만 싱가포르달러. 약 915만7000원으로 세계 최고액권. 국가·금융기관 간 거래에 사용된다. 5 2001년부터 유로존에서 유통되는 500유로. 약 88만9000원. 6 일본 1만 엔. 58년부터 발행되고 있으며 15만4000원쯤 된다. 7 역사상 최고액면권인 헝가리의 1해 펭고. ‘0’이 무려 20개나 되지만 당시 가치로 20센트에 불과했다. (기준일 : 1월 30일)

화폐는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정치를 품고 있는 ‘시각예술품’이다. 최고액권은 더욱 그렇다. 그 나라의 소득 수준과 지급 결제 관행, 사회·문화적 관습은 물론 ‘자존심’을 고스란히 반영한다.현재 세계에서 유통되고 있는 화폐 중 최고액권은 단연 싱가포르 1만 달러다. 1973년 발행된 1만 싱가포르달러는 원화로 환산해 약 915만원(1월 30일 현재)으로 ‘고액권 중의 고액권’으로 부를 만하다. 워낙 ‘고가’라 분실 신고를 했을 때 수표처럼 무효 처리가 가능하다. 분실한 1만 싱가포르달러의 고유한 ‘화폐 번호’를 은행에 신고하면 이 돈을 받은 은행은 결제를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화폐는 일반 거래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발행하기 때문에 국가 채권 거래나 기업에서 주로 쓰인다”고 말했다.

액면가 vs 실제 가치

일상 거래에서 유통되는 세계 최고액권으로는 스위스 1000프랑이 꼽힌다. 우리 돈으로 환산해 119만원가량 된다. 17년부터 발행되고 있는데 시중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가정주부가 동네 수퍼마켓을 이용하면서 1000스위스프랑을 내놓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한다. 1000스위스프랑은 최첨단 위조 방치 장치로도 유명하다. 화폐 중앙에 ‘20’이라는 미세 구멍을 새겨 넣어 빛에 비추면 나타나고 물을 흘려 보내면 그대로 통과하도록 만들었다. 화폐에 미세 구멍이 있는 것은 스위스프랑뿐이다. 스위스 태생으로 르네상스 미술·문화사의 대가로 꼽히는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를 세로로 새겨 넣은 것도 독특하다.

둘째가 2002년 1월 등장한 EU의 500유로(약 88만9500원)다. 유로존 가입 16개 나라에서 단일 통화로 사용하고 있다. 유럽에서 500유로면 고급 휴대전화 한 대를 살 수 있다. 이어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 등 북유럽의 부자 나라들은 1000크로나를 발행하고 있는데, 환율에 따라 각각 23만8600원, 20만100원, 16만7300원가량 된다. 영국은 50파운드(약 9만7000원)권이 가장 단위가 크다. 49년 발행된 노르웨이 1000크로네(NOK)는 도안 인물도 유명하다. 주인공은 ‘절규’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다.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 작가인 뭉크는 노르웨이에서 ‘국민 화가’로 추앙받고 있다(크로나는 왕관·crown이라는 뜻이다).

미국 최고액권은 100달러(약 13만7900원)다. 미국은 한때 500·1000·5000·1만.10만 달러권도 발행했으나 30년대 이후 중단했다. 일본은 58년부터 1만 엔권을 발행하고 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15만4400원. 원화가치가 급락하면서 지난해보다 50% 넘게 올랐다. 중국의 최고액권은 100위안으로 2만1000원이 조금 넘는다.돈의 가치가 아니라 숫자가 큰 순서로 따지면 터키의 2000만 리라를 첫손에 꼽을 만하다. 액면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가치로 따지면 1만7000원 남짓밖에 안 된다. 터키가 이렇게 초고액권을 발행한 것은 연 70~140%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97년 500만 리라, 99년 1000만 리라에 이어 2001년 터키 정부는 2000만 리라를 발행했다. 액면가가 너무 높아지자 터키 정부는 2005년 통화 개혁을 단행, ‘0’을 여섯 개 떼어 내는 화폐 개혁(화폐 액면을 줄이는 디노미네이션)을 실시했다. 2000만 리라가 20YTL(예텔레)로 바뀌었다. 터키 정부는 올 1월 1일부터 ‘터키리라’라는 새 화폐를 사용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터키 2000만 리라는 ‘0’이 무려 7개나 있었다. 금액을 구분하기 위해 터키 중앙은행은 ‘0’의 크기와 색상·채도를 각각 다르게 하는 ‘고육책’을 써야 했다. 앞의 ‘20’은 크게 자주색으로, 뒤의 ‘0’ 6개는 작게 녹색으로 하되 뒷부분 ‘0’은 세 개씩 밝기를 달리 했다.그러나 터키의 2000만 리라도 아프리카의 10조 짐바브웨달러에는 ‘꿇어야’ 할 듯하다. 액면으로 쳤을 때 현재 세계에서 유통되고 있는 ‘최고가’ 지폐가 짐바브웨달러(Z$)다. 지난달 초 10조 Z$ 지폐를 발행, 유통하기 시작한 짐바브웨 중앙은행은 앞으로 20·50·100조 Z$를 발행할 계획이다. 10조 Z$는 미화 30달러(약 4만13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역시 살인적 인플레이션이 불러온 결과다. 정치적 부패, 경제적 무능은 이 나라에 연 2억%대 물가 상승률을 불렀다. 그나마 지난해 7월 이후부턴 공식 통계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짐바브웨에서는 식당에 들어갈 때, 그리고 음식을 먹은 다음 계산할 때 요금이 각각 다르다고 할 정도다. 발행된 화폐는 일정 기간만 사용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화폐 앞면에 발행일과 유통기한을 명시해 한시적으로 사용하게 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10조 Z$도 약과다. 액면가만으로 따졌을 때 역사상 최고액권은 46년 헝가리에서 발행된 1해 펭고였다. ‘0’이 무려 20개나 되는 이 어마어마한 화폐는 당시 가치로 따져 미화 20센트에 불과했다.화폐 인플레이션의 대명사는 24년 독일에서 발행된 100조 마르크가 꼽힌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전쟁 보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마구 돈을 찍어낸 결과다. 인플레가 극에 달했던 23년 독일에서 버터 1㎏은 6조 마르크, 맥주 한 잔은 8000억 마르크, 신발 한 켤레는 32조 마르크에 달했다. 벽지 대신 지폐로 도배하는 것이 훨씬 쌀 정도였다. 1조 마르크 동전도 나왔다. 당시 100조 마르크는 미화 100달러 가치밖에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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