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월요인터뷰>6.25 맞아 統一大道 제시한 이광정 원불교 종법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그날이 오면 우리 민족의 누구라도 마음이 아프지 않은 이가 없다.바로 민족상잔의 6.25 -.그만큼 상처가 깊기 때문일 것이다.“상처는 균의 침노만 막아주면 새살이 돋아나 아물게 마련이다.과거의 상처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다시 긁어 사독나게 하는 어리석음이 있어선 안될 것이다.”이광정(李廣淨.61) 원불교 종법사는 상처를 치유하고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 모두의'경계(警戒)'를 특별히 이렇게 표현했다.원불교 창시자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대종사와 정산(鼎山).대산(大山)종법사에 이어 원불교 최고지도자에 오른 좌산(左山) 이광정 종법사.그는 6.25 47주년을 앞둔 지난 15일 익산시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출가.재가 교도 2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통일대법회를 갖고 민족통일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통일로 나아가는 큰 길'을 제시했다.여기엔'통일대도(統一大道)'를 비롯해'통일접근공식''통일작업요강''통일을 위한 경계''동포들의 분단 고초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제하의'통일호소문'이 포함돼 있다.원불교 중앙총부로 찾아가 좌산 종법사를 만났다.

-종법사께선 평소 통일에 대한 깊은 숙고와 구상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특별히 6.25를 맞아 통일대법회를 열고'통일대도'를 제시하게 된

동기와 배경은 무엇입니까.“숙겁다생(宿劫多生.오랜 세월)으로 굳어진

원한관계를 결정적으로 풀 수 있는 계기는 어느 한쪽이 곤경에 처할

때입니다.지금 북한이 그런 상황인 셈이죠.통일의 기류를 조성할 수 있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입니다.북한이 우리와 대등하다면 우리쪽에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겠지요.북한이 어려울 때 우리가 음과 양으로 도와주면

그들의 피해의식도 사라지고 서로의 응어리가 풀려 상생(相生)의 관계로 돌릴

수 있습니다.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충정에서 이런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통일방안의 핵심이라 할'통일대도'법문을 선포하셨는데

우리의 통일은 어떤 식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지난번 잠수함 사건으로도 경험했습니다만 피차간 큰 희생과

손실이 발생했습니다.항차 어떤 형태로든 무력을 동원한다면 이는 서로간의

자살.타살 행위로서 끝없는 희생만 되풀이하는 원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이를 깊이 깨달아 하루 속히 환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통일대도'는

대해원(大解寃).대사면(大赦免).대화해(大和解).대수용(大受容).대협력(大協力)

.대합의(大合意)의 6단계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신다면.“먼저 남북한은 원한관계를 풀어야 합니다.마음을

여는'대해원'이지요.통일의 출발점은 여기서 시작됩니다.대해원은 더

나아가'대사면'으로 나타나겠지요.이를테면 6.25에 대해서도 이

순간부터'사면'을 해야지'법정'에서 따지고 들겠다면 북한에서도

사생결단으로 달려들게 됩니다.과거를 묻어버리고 어깨동무할 때'대화해'의

정신에 이르게 됩니다.통일후 국호(國號)같은 문제도 어지간하면 북쪽의

요구를 수용하는 데까지 나아갈 필요가 있어요.바로'대수용'의 상태지요.이

단계에까지 이르면'대협력'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통일 후에도 우리는 북한을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할 판이지요.통일 전에

우리 기업 단독으로 진출할 경우 좌지우지하려 들지 모르니까 경제및

기술협력은 외국기업과 합작형태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그러면

북한에서도 국제관례를 무시할 수 없지요.어떤 식으로든 북한이 한국과

세계로 눈을 돌리도록 도와줘야 해요.그래야만 달라지게 됩니다.그런 뒤에

통일헌법.통일정부 등에'대합의'를 창출해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 95년 미국 방문때 독일 통일 당시 서독 외무장관이었던 겐셔의

회고록에 관한 기사를 보니까 서독이 동독에 대해,미국이 소련에 대해

강권정치를 포기한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더군요.그

과정에 서독정부는 알게 모르게 동독을 수없이 도왔답니다.민간인들은

수시로 드나들었고요.내가 평소에 지녔던 신념을 겐셔장관이 입증해준

셈입니다.”

-'통일호소문'은 누구에 대한 호소문입니까.“국민을 향한 것이면서 북한

당국자들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중국관리와 재미(在美)교포를 통해 이미 이

호소문은 북한 당국자들의 손에까지 들어갔을지도 모릅니다.” -호소문에

담고자 한 핵심 내용은 무엇입니까.“북한과 남한 당국자에게 정권이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에서 깨워주고 싶었습니다.통일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이지요.지금 정권 당국자들이 모든 원한을 백지로 묻어버리고

통일을 일궈내면 역사에 영광으로 길이 남게 됩니다.당국자들의 심경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호소한 것입니다.” 통일호소문은 A4용지 3쪽

분량으로'당국자들의 심경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간간이 강조하기 위해 굵은 글자로 쓴 부분들이 있는데,“한 생각

돌리면 천하에 쉬운 일,이 쉽고 쉬운 일이 그렇게도 어렵단

말입니까”“앞으로도 더 희생해야 하고 국력을 더 낭비해야 하고

민족역량을 더 소비해야 한단 말입니까”등 간절한 대목들이 얼른 눈에

들어온다.

-말씀을 들어보면 상당히 진보적이란 생각이 듭니다.교단의 정서보다

앞선다는 시각도 없지 않은데,어디서 그렇게 포용력있는 통일방안이 나오게

된 것입니까.“원불교에 몸담고 마음세계의 원리를 공부하다 보니 그런

방향으로 생각이 열리더군요.원불교엔 상극(相剋)을 상생(相生)의 사상으로

돌리는 독특한 데가 있어요.통일은 좁은 생각으로는 절대

안됩니다.하해(河海)같은 마음으로 넓게 접근해야지 콩이야 팥이야 따져서는

제자리에 머무를 뿐입니다.남북한의 고통은 식량만으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통일이 돼야 해결됩니다.정치적인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분단 모순이 극복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정신과 도덕의

불모국이 돼요.” -그래서'통일대도'를 내놓으셨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구상이고 이러한 구상을 교단 차원이나 사회적으로 실천할 방안을 따로 갖고

계십니까.'통일대도'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종교단체나 사회단체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는데요.“우리는 지금

통일종교인회의.한국종교인평화회의.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앞으로 사회운동 차원에서 넓혀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우리의

방안에 대해 다른 종교나 사회단체가 이의를 낼 수도 있습니다.원불교에서는

상생과 은혜의 사상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겠습니다.지금처럼 세계가

하나가 되어가는 구도에서는 누구도 적대와 대립관계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서로 더불어 살아야만 우리 민족의 활로가 열립니다.”

-요즘 종교단체들이 북한방문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북한선교를

위한 교두보확보 경쟁으로 비치기도 합니다.통일문제를 푸는데 종교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선교도 통일을 이룬 뒤의

문제입니다.벌써부터 선교를 생각한다면 너무 성급한 자세 같습니다.통일에

전력투구해야 할 때입니다.모든 종교는 민족화해와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또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앞으로

평화체제 구축에 종교의 호소력이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전쟁억지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뢰회복을 바탕으로 한 평화체제

말입니다.이제 정부도 형님다운 자신감으로 동생의 투정을 받아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현실입니다.종교지도자가 내놓은 통일방안이

비현실적이라는 정부의 반응도 있을 것 같은데요.“물론 모든 사태에

대비하는 정부의 노력도 중요합니다.하지만 당국이 통일접근 시각을 약간

수정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당국접촉이든 민간접촉이든

선후(先後)관계는 중요하지 않아요.선후는 가능한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어느 것이든 궁극적으로 북한을 변화시킬 것이며 변화가 무르익어야

통일작업을 진행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야

합니다.정부 차원에서 곤란하다면 민간교류라도 좀더 열어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그러면 북한주민들의 우리에 대한 인식도 좋아질 것입니다.”

-북한에도 원불교도가 있습니까.“소태산 대종사께서 개성 이북지역에는

교당을 만들지 못했어요.최근 개성에 원불교 교도가 한분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지금 난국을 맞고 있다고들

합니다.종교지도자로서 정계에 한 말씀 하신다면.“우리나라 정치환경중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이'연쇄 소아주의적 집단이기주의'입니다.우리 민족의

분단원인도 거기에 있지요.2차대전후 우리나라는 오스트리아와 상황이

비슷했어요.오스트리아는 처음 4개국에 점령당했다가 나중에는 미국과

소련으로 나뉘었는데 결국 공산당까지 협력해 외국군대를 몰아내고

단일정부를 수립했습니다.우리나라의 경우 백범(白凡)선생이 단일정부

수립을 주장했지만 많은 사람이 미국과 소련 어디에 기대면 출세할까 하는

이기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바람에 이렇게 분할되고 말았지요. 대통령 자격은

▶정직을 바탕으로 한 투철한 무아봉공자(無我奉公者)▶빠르고 정확한

판단력 소유자▶지혜로운 사람,즉 지자(智者) 본위의 인사능력자등 세가지로

압축하고 싶습니다.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역량이 1백% 발휘되도록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 역량인데 그렇게 되려면 분야마다 지자(智者)가 자리잡고

활동해야 합니다.”

-정치와 종교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과거 대립관계도 있었고

정경유착처럼 밀착관계도 있었는데 정치와 종교는 엄부(嚴父)와 자모(慈母)의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정치는 현실세계를 다스리고 종교는 마음세계를

관리하는 보완의 역할이 바람직하지요.” -종교는 날로 번창하는데 사회는

더욱 혼탁해지고 있습니다.종법사께선 이 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동서양의 어느 종교를 봐도 정신을 개벽하는 곳은

없습니다.신앙적 매달림은 있지만 우리의 마음세계를 구체적으로

바루어가는 작업은 없다는 뜻입니다.종교의 기능은 어두운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고 각박한 세상에 훈훈함을 불어넣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마음을

수련하는 훈련법을 개발해 도덕적 타락을 막지 않으면 신자는 늘어도 범죄는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시대를 담당할 청소년들에게 당부의 말씀이

있으시다면.“한총련과 같은 의식이 꼭 필요한가요.경찰도,정부도 원수가

아닙니다.백범 선생은 내 민족에게는 뺨을 맞아도 행복하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지금 세계는 과거의 적대국과도 손잡고 번영을 추구하는데

나라 안에서 티격태격해서야 말이 되나요.지금 국내문제로 소모적인 싸움을

할게 아니라 세계로,미래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일과중 어떤 부분에 가장

마음을 깊이 쓰십니까.“오전4시30분 잠자리에서 일어나 좌선할 때 마음을

씁니다.그후 요가와 청소.아침공양을 끝내고 9시부터 집무에 들어가면서

긴장을 하는 편입니다.토요일에는 건강을 위해 주로 산행을 합니다.”

정리=정명진 기자.사진=방정환 기자

<프로필>

▶36년9월:전남영광 출생

▶54년3월:원불교 입교 출가

▶63년3월:원광대 원불교학과 졸업

▶67년3월~73년2월:전북 운봉교당및 익산교당 교무

▶73년3월~77년4월:원불교 총부 교무부장

▶77년5월~82년11월:문화부장

▶82년10월:좌산(左山) 법호 받음

▶82년12월~88년1월:서울사무소장겸 종로교당 교감

▶88년11월:원불교 의결기관인 수위단(首位團)의 중앙단원 피선

▶91년4월:원불교 최고 등급 바로 밑 단계인'정식 출가위'(出家位) 승급

▶94년11월:원불교 제4대 종법사 취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