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 끝 보이는데 … 반도체 ‘봄은 언제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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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세계 5대 D램 업체인 독일 키몬다의 파산신청 소식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의 주가가 급등했다. 2년간 이어진 반도체 업계 ‘치킨 게임’의 끝이 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섣부른 전망이라는 관망론이 아직은 우세하다. 지구촌 실물 위축의 골이 워낙 깊어 반도체 수요가 쉽사리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다’는 뜻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같은 분위기다.

◆가격 반등할 것 같은데=키몬다는 23일(현지시간) 독일 뮌헨 행정법원에 파산신청을 했다. 이 회사는 2007년 2분기부터 7분기 연속 대규모 적자를 냈다. 지난해에는 매출액과 영업손실 규모가 비슷할 정도였다. 지난해 9월에는 대만 이노테라의 지분 36%를 미국 마이크론에 팔아 현금 4억 달러(당시 약 5000억원)를 간신히 마련했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난해 8월까지 2달러를 넘나들던 1기가비트(Gb) DDR2 가격이 연말에는 0.8달러까지 떨어질 정도의 극심한 가격경쟁을 버티지 못했다. 지난해 말 독일 주정부와 모기업 인피니언 등으로부터 모두 3억2500만 유로(약 6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회생을 도모했지만 올 들어 정부에 요청한 3억 달러의 추가 지원책이 지연되자 파산을 택했다.


키몬다에 이어 대만 프로모스도 위기다. 이 회사는 다음 달 14일 111억 대만달러(약 4500억원)의 해외전환사채(CB)를 상환해야 한다. 대만 정부는 파워칩·난야 등 자국 반도체 업체들에 프로모스 합병을 지원 조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모두 난색이라 파산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키몬다는 D램 시장의 9%, 프로모스는 2%를 점했다. 이 때문에 이들 업체가 생산 차질을 빚을 경우 다른 반도체 업체의 실적 호전 기대가 커지고 있다. 김장열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단기적으로는 키몬다가 밀어내기 수출을 할 경우 현물가가 내려갈 가능성이 있지만 2분기 이후 전반적인 공급 축소로 30%가량 반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대규모 적자를 본 것이 확실시되지만 28일 상한가를 기록하며 8060원까지 올랐다. 반도체 부문이 적자로 돌아선 삼성전자도 이날 10% 이상 오른 48만8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수요 회복은 불투명=공급 과잉이 꽤 해소된다 해도 수요 회복이 더디면 시장이 확 살아나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마이크로소프트(MS)·소니·노키아 등 글로벌 간판 정보기술(IT) 업체들의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MS의 지난해 4분기 순익은 전년 동기 대비 11% 줄었다. 그만큼 PC가 안 팔린다는 뜻이다. 휴대전화 세계 1위인 노키아의 순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3분의 1로 줄었다. 이 회사는 올해 휴대전화 수요가 지난해보다 10% 줄 것으로 본다.

특히 PC용 고성능 그래픽카드에 들어가는 고성능 그래픽 D램, 휴대전화 용으로 전력 소모가 적은 모바일D램과 저장용 플래시 메모리 등의 수요 감소 폭이 크다. 삼성전자의 홍완훈 전무는 23일 4분기 실적 발표 후 열린 경영설명회에서 “반도체 수급 균형은 4분기나 돼야 하지 않나 하는 비관론도 있다”고 전했다.

국책사업인 반도체 지원을 위해 2000억 대만달러(약 8조원)의 실탄을 준비하고 있는 대만 정부의 움직임도 변수다. 메리츠증권의 이선태 연구원은 “키몬다의 파산신청이 반드시 가동 중단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만 정부가 자국 업체의 생존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고 적극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이 변수”라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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