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산 영어교육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수많은 국제회의가 한국에서 열리고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한국인들이 외국에서 열리는 여러 종류의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회의에서 우리대표들이 얼마나 우리의 입장과 그들 개인의 의견을 정확히,또 효과적으로 발표하며 활약하는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세계환경의 날을 전후해 서울에서 열린 두 국제회의에 참석하며 우리의 뜻을 영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다시 한번 느꼈다.동시통역이나 직역한 문체로는 감동적인 연설이 나올 수 없고 참뜻을 전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얼마전 어떤 잡지가 한국에서 노벨상이 나올 가능성을 점검한 기사에서 문학상은 더 고도의 번역기술을 습득하기 전에는 어렵다고 결론지었다.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영어가 통하는 수준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최하위권을 마크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면 왜 수많은 해외유학과 연수경험을 가진 인재들이 있으며,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최소한 10년을 공부하고도 외국어에는 별로 재주가 없다는 일본인들보다 뒤지고 있는가. 그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우리가 영어는 가르치되 그 언어가 자라고 쓰이는 문화와 배경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개의 외국어를 마스터하려면 그 나라 초.중.고교 교재에 나오는 소재들을 알고 문화.역사와 사회생활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노르웨이의 미래학자 스타이나 옵스타드는 앞으로의 국가경쟁은 얼마나

국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소화해 내는가에 달렸다고

단언하고 있다.이 인터넷의 공용어가 영어다.그래서 7세때부터 영어를

가르치던 노르웨이는 지난해부터 6세때부터'생활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는 언어장벽을 갖고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없다.영어 때문에

우리나라의 많은 분야,특히 관광.호텔.식당.항공사같은 서비스업에서 우리는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산 영어를 구사하는 교사가

필요한데,일석이조의 해결방법이 있다.일본에서는 미국의 대학졸업생들을

2~3년간 계약으로'수입'해 시골학교까지 전국에 영어교사로 파견하고

있다.이중에는 한국인 2,3세의 젊은이들도 많이 포함돼

있다.2만~3만달러정도의 연봉과 주식(住食)을 해결해주는 대가로 영어뿐만

아니라 젊은 외국교사들의 사고와 그들의 문화바탕을 아울러 접할 기회를

일본 어린이들에게 만들어주는 것이다.또 이렇게 2~3년 일본에서 생활한

외국학생들은'일본통'이 돼 미국 전역에 심어진다.

지금 미국에서는 우리 2,3세의 대학졸업생들이 취직이 어려워 닥치는대로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경우가 허다하다.우리가 매년 5백명정도만 이들을

데려와 전국에 영어교사로 파견하면 우리는 비교적 싼값에 본토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인재들을 확보할 수 있고,또 한편으로는 교포후손들에게

조국의 얼과 문화.언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미국에서 한국의

문화권이 자라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꼭 미국이나 영어권으로 한정할

필요도 없고 일본.중국.러시아.중남미 등의 교포 자녀들에게도 한국에서

특별언어.문화교사로 일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을 잘 아는 컬럼비아대의 노교수는 자기는 평생 수많은 한국사람들과

접촉하며 토론도 하고 강연도 들었는데,정말 감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연설은

꼭 한번,1950년대초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이 미국 상.하원합동회의에서 행한

영어연설이었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그 연설의 내용도

좋았겠지만 미국문화를 꿰뚫어 소화한 李대통령이 그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호소력있는 문장을 쓴 결과였을 것이다.

이제는'국가체면'때문에 자기나라말로 연설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싫든

좋든 영어가 외국어가 아닌 세계공용어로 쓰이는 이 시점에 우리도 이에

걸맞은 알맹이 있는 영어교육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구삼열 유엔본부특별기획국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