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2만5000명 시대] "한·미 관계 심각한 적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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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말까지 미국이 주한미군 1만2500명을 감축할 계획으로 알려진 가운데 8일 동두천 미 2사단 본부 앞 거리를 배낭을 멘 미군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

주한미군의 감축 계획이 발표되자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반응이었다. 일본 신문들은 한.미동맹의 균열을 우려했다.

◇데이비드 스타인버그(조지 타운대 아시아 연구소장)=미국은 감군 결정 과정에서 한국과 긴밀하게 협의한 것 같지 않다. 이는 미국이 한국과의 동맹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하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빼내는 조건으로 북한으로부터 상당한 반대급부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일방 철수는 현명하지 못한 결정이다. 북한이 장성급 회담에서 한국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미국을 상대적으로 나쁘게 보이게 만들어 한국 내에서 북한의 이미지와 입지를 더 좋게 하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해 일치된 입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위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조엘 위트(국제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감군 결정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적 실책이다.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주한미군을 빼는 건 논리적 모순이다. 미국은 이라크 문제에 사활을 걸면서 모든 외교적 결정을 거기에 맞추는 바람에 일관성을 잃어버렸다. 미국은 중요한 동맹들을 잃어가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한반도에서 1만2000명이 빠져나가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민들은 미국으로부터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고든 플레이크(맨스필드 연구소 선임연구원)=한.미 관계의 심각한 적신호다. 한국 정부와 충분한 상의없이 감군을 결정한 것 같다. 21세기 미군의 역할이 달라져야 하지만 이런 식의 성급한 방법이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한국 내에서 '그러려면 다 철군하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도 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이어 노무현 정부도 북한의 위협을 과소 평가해왔기 때문에 국민은 위협이 없는데 왜 미군이 주둔하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원하지 않는 나라에는 주둔하지 않겠다는 게 부시 행정부의 입장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반미 시위나 반미감정이 다시 격화되면 미국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 수 없다.

◇제임스 톰슨(랜드 연구소장)=미국 입장에서 보면 주한미군 감축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미국은 1990년 초 냉전 종식 이후 미군의 기동화, 경량화를 추진해왔는데 주한미군은 북한의 위협 때문에 재배치가 늦어졌다. 동남아와 중동을 포함하는 기다란 지역은 10억명 이상의 이슬람 인구가 사는 곳으로 향후 테러, 분쟁 등 세계의 화약고가 될 공산이 크다.

◇아사히(朝日).마이니치(每日)신문=마이니치는 "주한미군 감축은 동북아시아에서 군사적인 면뿐 아니라 정치적 마찰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한.미 관계가 틀어지면 오히려 한국의 중국 의존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아사히는 "내년 말까지 주한미군을 줄인다는 것을 한국 정부가 미처 상정하지 못했던 듯하다"며 "한국이 북한과 급속히 가까워지면서 동맹보다 민족을 중시하는 풍조가 반미감정으로 연결돼 결국 주한미군 감축이 이뤄지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고 진단했다.

워싱턴.도쿄=김종혁.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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