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票밭 눈치보는 고속철도 정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상역은 아닙니다.길도 없습니다.”건설교통부는 경부고속철도 대전.대구역'지상역 추진'보도에“전혀 검토한 사실이 없다”며 딱 잡아뗀다.과거와는 다른 의외의 반응이다.3년전엔 반대였다.대전.대구시민이 고속철도가'시끄럽고,이웃을 단절시키며,동네를 지저분하게 만들고,땅값.집값을 떨어뜨리는 혐오시설'이라며 지상통과를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자,건교부는“공사방법,공사비 때문에 지상역이 불가피하다”며 완강히 버틴 적이 있다.당시 건교부.고속철도공단 관계자는'고위층의 정책적인 지하역 결정'을 상당히 억울해했다.

건교부는 고속철도가 대도시를 지하로 통과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을 잘 안다.더욱이 TGV는 초고속열차다.이 열차가 땅밑을 가로 지르며 대전 18.5㎞,대구 31㎞구간을 통과한다고 상상해보자. 우선 이미 건설.계획돼 있는 지하철 때문에 대전은 땅밑 40,대구는 50 깊이까지 파야 한다.땅을 파는데만 5년,파내야 할 흙만 자그마치 15 덤프트럭 32만대분이다.이 흙을 버릴 곳조차 마땅치 않다.게다가 평탄성이 생명인 고속철로에 내리막.오르막 경사가 불가피해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소음은 더 문제다.TGV열차 소음은 프랑스 평지에서도 유명하다.한 전문가는“터널내에선 아마 천둥.번개치는 소리가 날 것”이라며“서울 지하철의 소음은 모기소리 수준”이라고 귀띔한다.

또 역사(驛舍)는 어떤가.건설에만 2년 넘게 걸린다.지하 깊은 곳에 안전한 역사를 짓는 기술도 문제다.환기.조명.화재등 비상사태를 우려하는 전문가도 있다.승객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할지도 모를 지하역은 지상역에 비해 건설비.운영비가 모두 월등히 비싸다.

이런 문제점을 알면서도 건교부는 지하역을 고집한다.대선(大選)을 앞둔 시기에 대전.대구 시민을 설득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이제 서울도,부산도 모두 지하역을 주문하고 있다.이 요구를 다 들어주면 경부고속철도 전장의 20%는 지하터널이 되는 셈이다.돈도 문제지만 이러다간 고속철도 본연의 기능이 훼손된다.

결국 정책적인 지하역 건설은 마땅히 재검토돼야 한다.지상통과가 정말 불가능한지,역사는 변두리에 짓고 대중교통수단으로 도심을 연계하는 방안,속도 설계기준을 낮추는 방안등 지하 통과를 대신할 다양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7월초 건교부가 발표할'경부고속철도 기본계획 재검토'에는 당연히 지상역 대안도 포함돼야 한다.

음성직 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