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농성장 찾은 어머니 애원 아들 끝내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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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어서 그만 집에 가자.”“어머니,어떻게 알고 오셨어요.저는 할 일이 있습니다.” 13일 오후10시15분 한총련 구국단식단 대학생 31명이 서로 몸을 쇠사슬로 묶은 채 농성중인 명동성당 입구 계단. 가로등 불빛이 어둠을 밝히는 가운데 40대 후반의 어머니가 농성대열 뒤쪽에 앉아 있던 아들을 발견하고는 소매를 부여잡고 귀가를 애원했다.

아들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어머니는 갑자기 말문이 막힌 듯 잠시 허공을 쳐다본 뒤 흐느끼기 시작했다.그 옆에는 아들의 옷가지를 넣어 온 쇼핑백이 뒹굴고 있었다.

외부인이 접근하면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던 단식단 학생들도 숨을 죽인 채 모자(母子)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학생들은 이틀째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고 소금물로만 연명한 탓인지 모두들 어깨가 축 늘어졌고 특히 여학생들은 기진맥진해 쇳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머니는 20여분 동안 아들을 설득했으나 이기지 못한 채 먼저 도착해 있던 어머니들의 위로를 받으며 자정이 넘을 때까지 성당 입구에 서서 밤이슬을 맞았다.혹시라도 아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갈까봐 강원도 산골에서 왔다는 말 이외에 자신과 아들의 신분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이에 앞서 낮12시30분쯤에도 50대 아주머니가 아들을 귀가시키기 위해 성당에 들렀으나 역시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어머니는“텔레비전 뉴스에서 네 얼굴을 보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아버지가 너 때문에 충격받고 병원에 입원했다”고 설득했으나 아들은 애써 이를 외면했다.성당 앞을 지키는 한 경찰간부는“이유야 어찌됐든 부모의 애타는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배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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