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흐름>개념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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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미술이 말을 건다.

“황혜선의 최근작은 다소 의외였다”며 작가 황혜선(28)의 작품은 스스로를'의외'라고 설명하기도 하고,때로는'좋은 작품'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한다.“뭐,이런게 미술작품이야?”라며 반발할 순진한 관람객을 위해서는 심지어'작품'이라고 친절하게 말해주기까지 한다.입을 통하지 않을뿐 관람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행위다.

박소영(36)도 간접적으로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그림을 버리고 대신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단어를 직접 작품속에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황혜선과 맥이 통한다.사람의 눈을 보여주기 위해 눈을 그리기보다'눈'이라는 단어를 종이에 적어 관람객과 직접적인 대화를 시도한다.

안규철(42)은 또 어떤가.날개 모양의'그 남자의 가방'에 담긴 작가의 철학적 사고를 직접 글로써 설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서로 공존할 수 없을 것같은 조각과 언어가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세대와 성(性)이 다른 이들 세 작가를 이처럼 한데 묶을 수 있는 용어는 바로'개념적 미술'이다.80년대 민중미술에 이어 90년대 설치미술의 기세가 한풀 꺾인 지금 우리 미술계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는 작가들은 대개 이런 경향의 작가들이다.

'개념'이라는 단어가 주는 난해함 만큼'개념적 미술'이라는 구절은 쉽게 와닿지 않는다.어떤 것이 도대체 개념적 미술인가.'개념미술'의 사전적 의미는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작품보다 작가의 아이디어 자체가 바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반(反)미술적 사조를 말한다.이런 사조는 현대미술사의 큰 흐름 속에서 보면 60년대 잠시 스쳐간 것에 불과하지만 여기서 영향받은 많은 작가들이 이어온 것이 소위'개념적 미술'인 셈이다.

어떤 평론가가“미술을 문학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라고 말한데서도 알 수 있듯 전통적인 미술의 이미지나 형상 대신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그대로 작품 위에 쓰는 것이다.

그렇다면 팝 아트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팝 아트 대표작가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의 한컷을 그대로 작품에 복제한 작품을 내놓았다.등장인물의 대사가 들어있음은 물론이다.또 김창렬의 물방울 그림의 바탕화면에도 문자,즉 한자가 등장한다.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단어는 그림의 보조물,즉 그 자체의 조형성 때문에 차용됐지만 개념적 미술 속의 단어는 의미있는 단어라는 차이가 있다.

뉴욕에서 공부한 황혜선 외에 위에 언급된 박소영과 안규철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대 출신이다.이들 외에도 요즘 개념적 작업을 한다는 많은 작가들은 독일에서 공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술평론가 강성원씨는“독일은 표현주의적 양식과 개념적 작업이 공존한다”며 “개념적 양식의 교수 밑에서 공부한 작가들이 최근 활발히 활동하기 때문에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작가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데 있어 꼭 말을 빌릴 필요는 없지만 네온을 통해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고 말하는 바버라 트루거 류(類)의 유행이라고 분석했다. 안혜리 기자

<사진설명>

안규철 '그남자의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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