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 칼럼

중국 기침하면 한국은 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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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0여년 전 서울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한국의 한 경제학자에게서 "미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한국 경제의 대미(對美)의존도가 워낙 심하다 보니 미국 경제의 사소한 문제도 한국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 후 3년도 못 돼 우리는 미국이 기침을 하지 않아도 한국이 감기에 걸릴 수 있음을 알았다. 1997~98년 한국의 금융위기는 북미가 아니라 태국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한국의 분석가들도 동의하듯 금융위기는 확실히 한국 경제 내부, 특히 금융분야의 취약점에 뿌리를 둔 것이다. 그렇더라도 전염에 의미가 있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 경제가 외부환경의 위기에 전염될 위험이 있는지, 특히 중국 경제의 침체에 영향을 받는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사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중국은 한국 수출의 최대 직접 목적지로서 미국을 추월했다. 직접 목적지라고 말한 것은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품의 일부가 미국 등 다른 나라로 재수출될 중간재이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미국은 여전히 한국 수출품의 가장 큰 최종 시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내수시장을 위한 한국 수출품이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과거 한국의 경제성장은 주로 수출에 의존해왔다. 실제로 주요 국내총생산(GDP) 구성요소 가운데 수출만이 의미있는 성장세를 보여왔으며 소비증가율은 오히려 감소해왔다. 그래서 한국의 커다란 수출시장이 기침을 하면 한국이 감기에 걸릴 가능성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주요 걱정거리는 중국 경제가 과열로 치닫다 끝내 침체 국면에 접어드는 것이다. 과열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지나치게 높은 투자율(중국 GDP의 45%에 이르는)이 그중 하나다. 투자가 모두 높은 이익으로 이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상하이(上海) 등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 폭등을 초래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1980년대 일본과 90년대 동남아시아에서 벌어졌던 부동산 거품현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낸다. 게다가 중국 농촌지역의 인플레이션 문제도 야기한다. 2003년 9월과 2004년 3월 중국중앙은행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과열은 식을 줄 모른다.

과열에 대한 우려는 중국 은행 시스템의 불안정에 대한 우려와 중첩된다. 중국 은행들이 경영이 효율적이지 않은 국영기업들에 대규모 대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과거 수년 동안 거액을 쏟아부었지만 중국의 4대 은행은 체질개선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과열을 진정시키려는 그 이상의 조치, 예컨대 은행대출 축소나 이자율 인상 등은 대형 은행들의 취약성을 더욱 증가시킬 수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춰 볼 때 한국은 감기에 걸릴까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일까. 걱정을 해야 하긴 하지만 우울증에 걸릴 정도는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희소식은 중국 당국이 자국 경제가 과열됐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중국 당국이 취한 조치들이 경제를 진정시키는 데 그다지 효과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에 최선은 중국 정부가 경기후퇴를 최소화하기 위해, 즉 현재의 연간 10%에 가까운 성장률을 지속 가능한 8%대로 낮추는 추가 조치를 내놓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가 몇몇 한국 기업들에 어려움을 줄 수는 있다. 중국의 주요 인프라 건설 계획이 늦춰질 때 한국에서 부상하고 있는 대중 철강수출에 악영향을 미치는 식이다. 하지만 그것은 중국의 과열이 정부 손에서 벗어나 통제 불가능한 인플레이션을 야기하고, 이에 따라 중국 정부가 불가피하게 가혹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보다는 한결 낫다. 결국 한국의 가장 큰 위험은 중국이 기침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기침을 다스리지 못해 폐렴에 걸리는 상황인 것이다.

에드워드 M 그레이엄 국제경제연구소(IIE) 선임연구원
정리=이훈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