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반딧불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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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느 천사의 넋이기로/한밤 기다려 별과 함께 피뇨/안타깝게 가물거리는/땅 위에 별/걷잡을새 없이 피고 지고-/반딧불이/너는 내 맘을 수 놓는/금실문 나비/쑥냄새 그윽한 내 고향 여름밤/너는 내 어린 시절의 꿈이었거늘/이제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 이봉순(李鳳順)시인이 시에서 읊고 있는대로 우리에게 있어 반딧불은 오랜 세월동안 꿈이요,고향이요,수수께끼였다.반딧불이(개똥벌레)가 왜,어떻게 빛을 발하는지는 몰라도 좋았다.한밤중에 둥둥 떠올라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반짝이는 반딧불이의 은은한 분위기는 그 자체가 신비였고 환상이었던 것이다.하지만 발광(發光)이 곧 반딧불이의 세계에서'사랑'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우리는 빛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오묘한 섭리에 놀라움과 부러움을 느끼곤 했다.

반딧불이는 종류에 따라 빛을 내는 방법과 습성이 다소 차이가 있지만 밤에 주로 활약하는 야행성 종(種)은 대개 암컷이 수컷의 발광신호에 일정한 간격으로 응답하며 사랑을 속삭인다고 한다.파파리반딧불이의 경우가 특히 재미있다.수컷이 약 1초에 한번씩 강한 섬광을 명멸하며 갈지자 형으로 암컷을 찾아다니면 암컷은 약 1 가까이로 접근한 수컷을 향해 깜빡거리듯 신호를 발하여 유혹한다.수컷은 천천히 암컷을 향해 섬광을 발하며 접근한다.

마침내 교미를 하기에 이르기까지 암컷과 수컷이 번갈아 발하는 빛을 한 곤충학자는'사랑의 대화'라고 표현한다.수컷이 빛을 발하며“나를 사랑하는가”물으면 암컷은 수줍게 빛을 발하며 “당신을 사랑해요”라 대답하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상상만으로도 매우 로맨틱한 정경이다.

하지만 반딧불의 추억은 기억속에서조차 희미해져가고 있다.그나마 도시에 사는 젊은층은 반딧불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채 살아간다.생태계파괴로 반딧불이들이 생명을 지탱키 어렵게 된 탓이다.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된 전북무주군 남대천 지역조차 6~7월중 하룻밤에 관찰된 반딧불이가 90년의 78마리에서 10마리 정도로 줄었다니 더 말할 것도 없다.'환경의 날'을 맞으며 사회일각에서 벌이고 있는'반딧불이 되살리기'운동이 메마른 정서에 꿈과 추억을 심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게 됐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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