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개각] 새 경제팀 특징·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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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위기 당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는 금융정책실장, 윤진식 경제수석 내정자는 청와대 조세금융비서관이었다. 두 사람은 신용경색과 원화가치 급락으로 붕괴 직전까지 몰렸던 금융시장의 야전책임자였다. 이른바 금융 실무를 책임지는 ‘윤-윤 라인’으로 불렸다. 권태신 국무총리실장 내정자와 허경욱 재정부 1차관은 98년 각각 국제금융심의관과 국제기구과장으로 ‘IMF 관리체제’의 대외 창구를 맡았다.

다소 과한 감이 들 정도로 옛 재무부 출신 금융통 일색으로 경제팀 진용이 짜인 것은 시장 상황 때문이다. 급강하하고 있는 경제가 기력을 찾으려면 금융이 제대로 돌아가야 하지만, 정작 금융은 빈사상태에 있다. 중개 기능이 마비되면서 한국은행이 수십조원의 돈을 풀어도 가계와 기업엔 돈 가뭄이 벌어지고 있다. 건설업계와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은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 이에 따라 건실한 다른 업종까지 부실이 전염되고 있다. 결국 이번 인사는 금융 수술을 금융 전문가에게 맡기라는 시장의 요구에 호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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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경제수석 기용이다. 경제수석은 직급은 차관급이지만 대통령의 최측근 경제 참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금융 전반을 꿰뚫고 있는 윤 전 장관을 최측근 참모로 앉힌 것은 이 대통령 자신이 경제 현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챙기겠다는 포석”이라면서 “최근 비상경제대책위원회와 비상경제상황실 설치의 연장선상에 이번 인사가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경제의 디테일을 모두 챙기면서 MB노믹스의 아이콘 역할을 해온 강만수 재정부 장관이 빠진 것도 이 대통령의 경제부처 장악력이 한층 높아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2기 경제팀의 면면이 옛 재무부 금융라인의 선후배로 짜임에 따라 1기 팀에서 빚어졌던 불협화음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포용력과 리더십이 뛰어난 윤증현 내정자와 치밀하게 현안을 챙기는 윤진식 수석 간에는 탄탄한 팀워크가 발휘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경제정책 핵심라인에 거시경제정책 전문가가 한 명도 없다는 점은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새 경제팀은 새로운 정책을 창의적으로 내놓기보다 현 위기 상황을 잘 관리해 경제의 파국을 막는 ‘관리형 경제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기 경제팀의 앞날은 결코 밝지 않아 보인다. 경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감소하기 시작한 일자리는 당분간 더 가파르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마이너스 행진을 시작한 실물경기는 언제 회복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금융시장은 아직 안팎의 작은 충격에도 출렁일 만큼 위태롭다.

새 경제팀에 대한 주문은 다채롭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핵심은 속도”라며 “녹색 뉴딜, 신성장동력 등의 정책 집행 속도를 최대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시장 안정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금융경색 완화를 위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 경제팀의 성패는 일차적으로 1기팀이 잃어버린 ‘시장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자면 시장의 다양한 기대를 어떤 방식으로 부응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상렬·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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