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리더⑪ 김동환 천도교 교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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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호 31면

민족 종교인 천도교는 올해 동학 창도(創道) 150주년을 맞는다. 천도교를 이끄는 최고 지도자는 김동환(75) 교령이다. 김 교령이 발표한 올해 신년 메시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쇠운(衰運)이 지극하면 성운(盛運)이 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은 오지만 사람들이 때를 알고 씨를 뿌리지 않으면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김 교령의 메시지는 경제 위기로 힘들어 하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지만 마치 천도교의 가까운 앞날을 예언하는 것 같기도 하다.

봄은 분명 오지만, 씨 안 뿌리면 열매도 없어

천도교는 한때 600만 명의 신도 수를 자랑한 적도 있으나 현재는 적극적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신도 수는 약 10만 명이다.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펴고 있는 천도교의 부흥을 위해 김동환 교령은 전국과 해외, 정계와 학교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발로 뛰고 있다.

김 교령은 교육자 출신이다. 대구 보성공고 설립자인 김 교령은 전국기술교육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천도교 내에서는 천도교교육자회 회장과 천도교종무원장으로 활약했으며 2007년도에 교령으로 당선됐다.

천도교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해방 직후에 엄청난 기세로 정신과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운동에 나섰다. 김 교령은 미국의 노예해방보다 1년 앞서 수운 최제우 선생이 여자 노비 2명을 해방하고 한 명을 수양딸로, 다른 한 명을 며느리로 삼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천도교의 교육사업 중시 전통을 상기시키며 고려대와 동덕여대도 천도교 교육기관으로 설립됐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천도교는 민족종교의 종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된 교세 침체의 원인에 대해 김 교령은 일제의 탄압, 국토 분단, 서구 문물의 유입 등을 열거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민족종교 육성 의지로 천도교는 1968년에만 해도 100만 교세를 자랑하기도 했다. 천도교 중앙총부가 있는 건물도 박정희 대통령의 지원으로 건립됐다. 당시 정부는 천도교 중심으로 민족 종교를 부흥시키기 위해 천도교 외에는 민족 종교 단체 등록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김 교령은 전한다. 당시 천도교는 천도교를 ‘울안교’, 천도교에서 갈라져 나간 종교는 ‘울밖교’라고 불렀다. ‘울밖교’에 속하던 종교 단체들도 개별적으로 등록을 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천도교의 교세는 더욱 위축됐다. 천도교는 지금도 천도교가 민족 종교의 종가라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13일에 김동환 교령을 만나 창도 150주년을 맞은 천도교 신앙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그 요지.

-최근 역점 분야는 무엇입니까.
“3·1 독립정신을 올바로 되살리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경제성장 못지않게 국민의 정신적 구심체가 필요하며 그 핵심은 3·1 독립정신이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경제성장을 위해 애쓰는 대통령의 마음에 대해 나는 찬사와 격려를 보냅니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의 성과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책 잘못이 아니라 국민의 심성이 갈갈이 찢어졌기 때문입니다. 빙판에서는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미끄러집니다. 그게 우리 현실입니다. 국민의 구심체가 없습니다. 우리가 똘똘 뭉쳤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각종 단체ㆍ정당ㆍ종교별로 뿔뿔이 흩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적 구심체는 3·1운동이 돼야 합니다. 2000만 동포가 종교ㆍ남녀노소ㆍ신분을 초월해 독립을 위해 뭉치지 않았습니까. 그 정신을 부활시켜야 합니다. 요즘은 3·1절이 놀러 가는 공휴일에 불과합니다.

나는 3·1운동을 교과좌정에서 보다 상세하고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3·1운동에서 천도교가 수행한 중심적인 역할에 대해 알려야 합니다. 천도교 대교당은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건립했습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김구 선생은 해방 후 여기 와서 ‘이 건물이 없었으면 31운동이 없었고 31운동이 없었으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대한민국 정부도 없었다’는 명강의를 한바 있습니다. 언제 또 그때 일본에게 당했던 것과 같은 설움을 받게 될지 모릅니다. 지금 살 만하다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민족의 뿌리정신을 지켜야 합니다.”

-최근 천도교를 둘러싸고 어떤 변화의 조짐이 있습니까.
“2~3년 전부터 천도교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습니다. 천도교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세상 뭔가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습니다. 세계는 약육강식, 전쟁, 자연 파괴. 인간성 파괴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 만한 사회가 사라졌습니다. 기존 종교나 이념에서는 세상을 되살릴 수 있는 진리가 없다고 많은 분들이 생각하고 있으며 그들은 해법이 천도교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천도교는 다른 종교와 어떻게 다릅니까.
“기존 종교는 신앙 대상이 초월적 존재입니다. 천상에 있는 신에게 매달리면 신의 예속물이 됩니다. 천도교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천도교는 한울님을 사람이 모시고 있다고 봅니다. 내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한울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달라집니다. 회사 사장이 종업원을 돈 버는 기계가 아니라 한울님으로 대할 때 산업평화가 달성됩니다. 선진국 사람들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뒤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같은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으로 여길 때 국제관계도 달라집니다. 누구나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자원의 쟁탈과 지배를 위한 전쟁이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내천(人乃天)을 온 인류에 전파해야 합니다.”

매일 저녁 9시 가족 간 대화
-한울님을 모시고 있어서 평등한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니까 평등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까.
“종교를 믿는 사람과 달리 믿지 않는 사람은 종교를 체험해 보지 않았기에 그 세계를 잘 모릅니다. 천도교에 입교하면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체험하게 됩니다. 수련을 시작해 주문을 한 시간가량 외우고 나면 몸에서 열이 납니다. 몸이 떨리고 초보자는 끝없이 웁니다. 참회하는 것입니다. 한울님을 내가 모시고 있다는 체험이 천도교의 핵심입니다. 한울님을 배제하고 사람은 다 평등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봅니다. 수련을 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몸이 가벼워지고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한울님을 알게 되면 뭘 해야 합니까.
“한울님을 알게 되고 나서도 한울님을 찾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됩니다. 방안에 부모님이 있어도 살피지 않으면 부모님의 존재를 잊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고(心告)를 합니다. 우리 교인들은 모든 일을 할 때마다 먼저 한울님에게 마음으로 고하는데 이를 심고라고 합니다. 사람을 만났을 때, 식사할 때에도 우리는 심고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청수(淸水)를 모시고 매일 저녁 9시에 집에서 예식을 거행합니다. 가족이 주문을 105회 외고 경전 한 편을 읽고 나서는 그날 일어난 일이나 고민 등에 대해 대화를 합니다. 싸우지는 않았는지,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대화합니다. 천도교 집안 아이들은 문제아가 없다고 자부합니다. 매주 일요일 11시에는 대교당을 비롯한 서울에 있는 20개 교회와 지방의 130개 교회에 모여 의식을 거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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