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라벨로 소비스타일을 바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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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인증라벨


유럽은 지금 ‘마을상점 살리기 운동’이 한창이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자동차 안타기 운동’이며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걷기예찬 운동’이다. 마을상점 살리기 운동의 기본은 근거리 생활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테면, 쇼핑을 하러 굳이 외곽까지 나갈 필요가 없이 지역 내에서 가능한 유통 구조를 만드는 것은 걷기를 일상화하는 실질적인 방법의 하나가 된다. 독일의 주부들은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삶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걷기의 즐거움을 되찾고자 주택가 골목을 아름다운 산책가로 꾸미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집집마다 울타리를 없애고 관상용 꽃나무를 심는 것이 유행이다.

스웨덴 역시 마을 내에 있는 환경마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오래 전부터 정책을 펼쳐왔다. 예테보리는 이 같은 환경정책이 사람들의 소비스타일까지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걷기를 추구하고 지역 내 상권을 살리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면 상품의 가치 또한 환경적인 입장에서 고려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판단은 빗나가지 않았다. 예테보리에서는 환경소비라는 개념이 다른 지역보다 빨리 생겨났다.

1980년대 후반, 이 도시의 사람들은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악덕 기업의 제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등 행동으로 확실히 보여주며 각 기관과 학교 주민들이 똘똘 뭉쳤다. 그리고 이 같은 활동이 전개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 주부들은 환경시장바구니를 들고 다녔으며 학생들은 재활용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녹색시민단체들은 환경가계부나 수첩 등을 제작하여 꾸준히 배포하며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러던 1995년, 시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환경소비정책을 펼치고자 육상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계기로 지역 내 호텔과 상점, 레스토랑 등 환경우수 점포에 ‘환경 특별상’을 주려는 의도였다. 이러한 정책은 오늘날 환경대책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에코호텔과 에코상점들의 시발점이 되었다.

ICA 매장


2009년 현재, 에코방침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 북유럽 최고의 호텔들은 최소 50%이상의 에코룸을 보유하고 있으며 2012년 까지 70% 이상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에코룸은 말 그대로 환경보호제품들로 구성된 룸으로 실내에 비치된 섬유 제품은 모두 유기재배로 만든 면이며 일부 전자제품을 제외한 98% 이상의 구조물들이 모두 재활용이 가능한 것들이다.

이렇듯 깐깐한 환경규칙은 ‘환경라벨 제도’로 확대되어 호텔 뿐 아니라 소비의 대상이 되는 모든 품목들에 적용되고 있다. 소비성향 자체를 친자연적인 것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의도이다 보니 녹색단체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감시하는 품목은 주로 세제와 배터리, 본드 등 화학성 제품들이다.

예테보리의 상점에 들어가 보면 물건마다 라벨이 붙은 것이 많다.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은 ‘KRAV, Environmental Choice, 노르딕스 완, Good ’등이 있는데 이는 모두 환경라벨이다. 상점 내에는 대부분 환경라벨 상품만 따로 전시되는 전용코너가 있는데 이 구역에는 어린이들이 수시로 눈여겨볼 수 있는 환경교육 게시판이나 구조물 장난감 등이 함께 준비돼 있다. 스웨덴 전역에 약 2250 여 개의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대형 슈퍼마켓 이카(ICA)는 에너지 절약, 쓰레기 관리, 환경라벨 상품 도입, 환경교육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2009년 현재 총 130여 군데의 점포가 공식 에코 스토어로 지정됐다.

소비패턴을 바꾸려는 당국의 노력은 대단하다. 친환경상품을 전시하는 마트에 세금감면 혜택을 주는가 하면 농부들의 유기농 상품을 국가에서 대신 마케팅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을 하는데도 에코 스토어에 전시된 상품 중에서 환경라벨이 붙어 있는 비율은 아직 채 3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세제나 화공약품 등은 기본적으로 환경라벨이 붙은 것으로 구입하는 것이 일반화 돼 있지만 그렇다고 전 품목 모두 그렇게 구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비용 면에서 현격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당장 자연을 가꾸고 쓰레기를 처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단연 모범을 보이고 있는 스웨덴이지만 제 아무리 스웨덴이라도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난관에 부딪치는 것이 당연하다. 에코를 삶에 실현시키기 위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슬로우’를 기치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스웨덴 역시 슬로우를 견디기 위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전 품목에 걸쳐 환경라벨 상품을 찾는 소비자들은 전체 소비자 비율로 보자면 10%도 되지 않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환경라벨을 홍보하고 그 라벨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패턴이 완전히 바뀌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환경정책이 생활 속 깊숙이 자리 잡힐 것이라는 것이 예테보리의 철학이다. 우리나라로서는 환경벤치마킹의 사계로 밑줄 그어야 할 부분이다. 끝.

협조 / 이노우에 토시히코, 사계절 출판사 (번역 김지훈)
주요 참고문헌/ 세계의 환경도시를 가다 (이노우에 토시히코ㆍ스다 아키히사 편저)
기타 참고문헌 /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 (박용남), 친환경 도시 만들기 (이정현), 도시 속의 환경 열두 달 (최병두), 친환경 도시개발정책론(이상광)
사진출처ㆍ예테보리 시청, 위키미디어

워크홀릭 담당기자 설은영 enyoung@j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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