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리곁의문화유산>강릉 굴산사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대관령을 넘어 강릉에 닿기만 하면 푸른 바다에 몸과 마음을 정신없이 빼앗겨 정작 문화 유적 답사는 뒷전으로 밀리는 형편이다.그러나 학산리에 있는 굴산사터는 대관령의 산줄기를 배경으로 한 너른 평지에 장쾌하게 펼쳐진 스케일이 돋보이는 곳이다.

굴산사는 통일신라 말 구산 선문 중 하나인 사굴산파의 중심 사찰로 이곳 강릉 출신인 범일국사(810~889)에 의해 개창됐다.전성기때는 수도하는 스님만 2백여명이 넘었고,쌀 씻은 물이 동해까지 흘렀다고 할 정도.그러나 이후 굴산사의 내력은 전하지 않고 빈 절터만 남았다.

굴산사가 다시 우리 곁에 등장한 것은 1936년 대홍수 때문이었다.당시 홍수로 인해 땅속에 묻혀있던 절의 주춧돌이 드러나면서'굴산사(掘山寺)'라고 새겨진 기와가 함께 발견됐던 것이다.

현재 논과 밭,그리고 민가가 들어서 마을 풍경의 일부가 돼버린 굴산사터에는 범일국사의 것으로 보이는 부도와 당간지주,그리고 석조비로자나삼존불상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이 있다.

특히 입구에 서서 절의 존재를 알리던 당간지주는 높이가 무려 5.4에 이르러 현존하는 우리나라 당간지주중 최대 규모로 알려지고 있다.어떤 장엄한 기운을 받아 땅 속에서 불끈 솟구친듯 힘차게 솟아있는 당간지주는 크기도 크기려니와 조각 솜씨가 여간 대범한게 아니다.보통 당간은 지주의 서너 배 크기.당간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그 높이는 무려 20여에 이르고,하늘을 찌를 듯한 그 긴 당간 위에 기마저 제대로 나부끼고 있었다면 멀리서도 한 눈에 절의 위용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부도는 2.5의 크기로 비록 각 부의 비례와 균형감이 다소 떨어지지만 조각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매우 아름답고 화려한 석조물이다.한편 지금은 빨래터로 쓰이는 마을 안의 한 우물은 범일국사의 탄생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범일국사는 강릉단오제 때 모셔지는'대관령서낭신'이기도 하다.

▶가는길=강릉 시내에서 내곡교를 건너 관동대 앞을 지나는 4번 시도로를 따라가면 길 오른쪽에 학산리로 가는 마을길이 나온다.마을길을 따라 1.2㎞정도 가면 학산리마을회관 앞에 닿는다.학산리 일대가 모두 굴산사터다.

글=김효형〈한국문화유산답사회〉

<사진설명>

굴산사터의 당간지주는 땅끝에서 불끈 솟구친듯 힘찬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김성철〈사진작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