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미 FTA 새 국면 … 지혜 모아 최선책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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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차기 국무장관 내정자가 인사청문회에서 “한국이 자동차·비관세 장벽 조항에 재협상할 뜻을 가지고 있다면 미국이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찰스 랑겔 미 하원 세입위원장도 올해 입법 순위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한·미 FTA에는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다”고 공개했다. 이제 한·미 FTA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오바마 차기 정부가 사실상 재협상을 요구하는 수순에 들어갔다고 해석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여전히 ‘재협상 불가’라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도 한·미 FTA가 양국의 국익을 균형되게 맞춘 협상이었다는 시각에 변함이 없다. 미국이 자꾸 시비를 거는 자동차만 해도 그렇다. 문제는 낮은 연비와 가격·품질 경쟁력이 떨어지는 미국 자동차에 있다. 퇴직노조원에게까지 의료복지를 부담하는 바람에 빅3가 휘청대는 것을 왜 한국 자동차 탓으로 돌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때 국내 수입차 시장의 절반을 차지했던 미국산 자동차가 왜 독일·일본 차에 밀렸는지 그 까닭은 미국이 더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재협상 우려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한·미 FTA 조기 비준을 국회에 일관되게 주문한 것도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국회의 직무유기로 절호의 기회를 흘려보낸 셈이다. 이제는 아쉬운 대로 다시 냉정하게 한·미 FTA에 접근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국익 차원에서 최선책을 찾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번에는 양국의 국회 비준까지 모두 계산에 넣어야 한다. 폭력으로 한·미 FTA 비준을 무산시킨 민주당도 이젠 힘을 보태야 한다. 자신들의 집권 시절 한·미 FTA를 체결해 놓고 이를 다시 정략적 카드로 삼는 것은 정말 명분 없는 일이다. 지금은 정부와 여야가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 응해야 할지부터 판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한 한·미 FTA가 양국관계를 방해하는 최대 난관으로 변질될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