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2차관 뉴욕 미션 “표를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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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5일 뉴욕 출장길에 오르는 신각수 외교통상부 2차관에겐 아주 특별한 임무가 있다. 국제기구 회의 참석을 겸해 주어진 미션은 선거운동이다.

3월 6일로 예정된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재판관 선거에 우리 정부 추천으로 입후보한 백진현(51·사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위한 선거운동이다. 신 차관은 하루 먼저 출발한 백 교수와 합류해 투표권을 가진 158개 유엔해양법협약 가맹국 외교관들을 상대로 발품을 팔며 ‘한 표’를 호소할 계획이다.

이번 선거는 지난해 11월 별세한 박춘호 재판관의 후임을 뽑는 보궐선거다. 당초 정부는 국제기구의 관행상 다른 나라가 후보를 내지 않고 백 교수가 무난히 당선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인도네시아가 후보를 등록함에 따라 치열한 선거전이 불가피하게 됐다.

외교부를 초긴장에 빠뜨린 의외의 강적은 인도네시아 출신의 누그로호 위스누무르티(68)다. 주(駐)유엔 대사와 주제네바 대사를 지낸 엘리트 외교관인 그는 유엔 안보리 의장과 비동맹기구 사무국장을 지냈고 1977년부터 89년까지 유엔의 각종 해양 협상에 참여해 해양법 분야에도 인연이 깊다.

비슷한 시기에 유엔에서 근무한 박수길 전 유엔 대사는 “위스누무르티는 대단히 활동적이고 인맥이 넓은 유능한 외교관”이라며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권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비동맹기구 의장을 여러 차례 지내 국제무대에서의 외교력도 간단치 않은 나라”라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외교부의 황승현 조약국장도 “상대 후보가 강적이어서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해양법재판소의 재판관은 대륙별로 배분된다. 아시아에 배정된 다섯 자리에는 한국 이외에 중국·일본·인도·레바논 등 4개국에서 재판관을 냈다. 인도네시아는 “재판관이 동북아 3국에 편중돼 있다”며 “동남아를 대표하는 재판관이 나와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또 인도네시아가 해상교통로의 요충에 있고 세계에서 서너 번째로 넓은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가진 해양국가라는 점을 호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예상했다.

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은 각종 국제 해양분쟁 때 중립적 위치에서 재판이나 중재를 수행하지만 재판관이 있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간의 영향력은 큰 차이가 있다. 외교부가 이번 선거에 총력전을 펴는 이유다. 재판관은 유엔 사무차장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당선하려면 158개국 가운데 3분의 2를 얻어야 한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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