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구속 다음에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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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현철(金賢哲)씨가 마침내 구속됐다.金씨에 이어 전 안기부 차장 김기섭(金基燮)씨의 구속과 한보로부터 돈받은 정치인들에 대한 처리로 한보사건은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그러나 현철씨의 영장에 나타났듯이 거액대출의 몸통은 결국 찾지 못했고 잔여금을 포함한 대선자금 문제도 규명하지 못했다.그런 점에서 우리는 현철씨의 구속으로 이 사건이 완결됐다고는 보지 않으며 야당의 철저한 진상규명 요구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선자금만 하더라도 철저한 규명을 위해서는 얼마나 끝없고 복잡한 문제가 가로놓여 있는지에 대한 현실인식도 불가피하다.대선자금을 밝혀내면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을 찾아내 위법 여부를 조사해야 하고 결국은 야당총재를 포함한 대통령의 책임문제로 헌정중단의 위기로까지 치달을 수밖에 없다.그 와중에 겪어야 할 소모와 갈등의 수위가 어떠할지 불을 보듯 확실하다.나라 전체가 근 반년을 한보수렁에서 헤맸는데 또다시 기약도 없이 이 문제에만 코를 박고 있을만치 우리 처지가 한가한가.경제살리기는 누가 하며 북한 기근에 따른 급박한 남북관계는 어떻게 정리하며,21세기는 어떻게 준비해나갈 것인가. 그런 점에서 우리는 金씨 구속 이후 정말 할 일이 많다고 본다.우선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아들과 대선자금 등의 문제에 관해 국민이 납득할만한 사과와 참회와 고백을 해야 한다.그래서 국민이 의혹규명은 그것대로 지켜보도록 하면서 사회분위기가 정상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 정치권은 소모적 정쟁(政爭)에서 벗어나 돈정치 혁파를 위한 제도개혁을 중심의제로 다뤄나가야 한다.의혹규명이 미흡하다고 해서 다른 중요한 모든 일을 손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검찰의 역할도 중요하다.일단 수사마무리가 되고 있지만 미진한 사항은 아직도 많다.긴장된 자세를 풀지 말고 의혹규명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대선자금이나 한보비리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에 동감하나 그렇다고 산적해 있는 급박한 나라의 과제들도 계속 방치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나라가 과거문제에 휩쓸려 리더십을 못찾고 계속 떠내려가게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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