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암 진료비 경감 이번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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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정책사회부 기자

'중병 환자 발생→예금 해약→집 팔거나 줄이기→직장 포기→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전락'.

집안에 중병 환자가 생기면 많은 서민은 이런 수순을 거치며 끝내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내리막길에 이를 저지해줄 만한 사회적 안전망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 2만 달러를 지향하는 나라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그래서 '중증 환자들의 진료비 부담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정부의 27일 발표는 큰 관심을 끌 만하다. 사실 이 방침은 새로운 게 아니다. 복지부는 2001년부터 대통령 업무보고 등에서 여러 차례 '중증 환자 진료비 경감 계획'을 밝혀왔다. 그러나 대부분은 '공수표'였다. 정부는 '늑대소년'이 됐고, 환자들은 가난을 원망하며 생을 마감해야 했다. 정부는 이번에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종전에는 건강보험 재정이 망가진 상태에서 마음만 앞섰지만 지금은 재정이 흑자로 돌아서 가용할 돈이 생겼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번 대책을 바라보는 중증 환자들의 기대도 여느 때와 다르다. 전문가들도 잘만 하면 든든한 사회안전망 하나가 갖춰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대책이 실행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현재 암 환자 부담의 40%를 차지하는 선택진료비(특진비)와 1~2인 고급병실료, 식사비 등은 여전히 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환자의 선택사항까지 보험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가 내세우는 이유다.

그렇지만 본인의 뜻과 관계없이 특진을 받아야 하고, 4~6인용 병상이 부족해 고급 병실을 울며 겨자먹기로 써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밥 안먹고 치료받을 수도 없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시행되는 정부대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특진제도 등을 합리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식사비 등 사실상 진료비로 볼 수 있는 항목만이라도 보험을 적용할 수도 있다.

'늑대소년'의 오명을 벗으려면 복지부는 '중환자를 위해 돈이 더 필요하니 보험료를 좀 더 올리자'고 국민을 설득할 용기를 내야 한다.

신성식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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