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렴정치회고록>15. 박정희 대통령의 현장점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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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통령이 국정현장에 나타나는 것은 여러모로 중요하다.대통령 자신은 현장속에서 국정의 냄새를 생생히 맡을 수 있다.현장의 사람들은“대통령이 우릴 쳐다보고 있다”며 긴장하고 힘을 얻는다.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현장으로 달려갔다.朴대통령에겐 그것이 무엇보다도 즐겁고 행복한 일인 것같았다.그는 나날이 길이 넓혀지고 새마을운동으로 늘어나는 기와지붕을 보며 생의 동력을 얻었다.그가 직업훈련원과 기계공고에서 기술을 배우는 청소년의 어깨를 만지면 학생들은 흥분으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곤 했다.

朴대통령이 현장을 돌며 마치 전쟁처럼 지휘한 것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다.朴대통령은 선전을 포고하고 전략을 세웠으며 직접 전투병사들을 지휘했다.67년 4월29일 朴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그 계획을 공표하자 야당은 물론 여당과 공무원 사이에서도 반대가 많았다.외국에서도“한국이 벌써 고속도로가 필요하냐”며 냉소적인 시각이 주류였다.

朴대통령의 첫번째 전투는 부족한 예산을 어떻게 적절히 쓰느냐였다.朴대통령은 4백28㎞를 3백억원에 건설하겠다는 각오였다.선진국에 비하면 기적같은 일이다.

용지매입을 위해 朴대통령은 혼자서 극비작전을 수행했다.포병장교 출신인 朴대통령은 지도를 직접 읽으며 노선 2~3개를 구상했다.朴대통령은 1차로 기공할 서울~수원간 후보노선을 그려본 뒤 극비리에 시중은행장 2명을 불러 용지의 시가감정을 부탁했다.

67년 11월28일 朴대통령은 건설장관.서울시장.경기지사를 청와대로 소집했다.朴대통령은 시가감정서를 내보이며 용지매입을 지시했다.

朴대통령은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공사를 감리할 사람을 구했는데 민간기술자가 매우 부족했다.朴대통령은 강직하고 책임감이 왕성한 육사출신 위관급 독신장교 22명을 군에서 선발했다.2차로는 ROTC 출신 12명이 뽑혔다.

70년 7월 경부고속도로 준공식에 참석했을 때 나는 朴대통령으로부터 공로훈장을 받는 젊은 위관급 공사감독관들이 부동의 자세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것을 목격했다.그것은 서훈의 영광 때문이 아니었다.2년5개월간 갖은 고생을 하며 책임을 완수해냈다는 벅찬 감동과 만감이 교차한 때문인 것이다.

朴대통령은 청와대에'전투상황실'을 설치했다.朴대통령은 건설계획을 분석.검토하기 위해 공병장교 3명과 건설부의 기좌(技座) 1명을 청와대 신관에 상주시키기도 했다.

회의나 접견같은 공식스케줄이 없고 시간이 날 때면 朴대통령은 차를 타고 공사현장으로 달려갔다.기층공사(흙다지기)가 완성돼 트럭이 달리는 길이면 朴대통령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렸다.

朴대통령이 고속도로에 대해 종교같은 신념을 갖게 된 것은 64년 12월 서독방문 때였다.朴대통령은 본~쾰른간 아우토반(독일고속도로)을 시속 1백60㎞로 달렸다.가고 오는 길에 朴대통령은 두차례나 중간에 내려 노면과 중앙분리대.교차시설들을 주의깊게 살피고 앞뒤의 선형(線形)을 조망했다고 한다.

'한국도로공사 15년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朴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고속도로 건설의 계획과 추진에 깊숙이 그리고 강력하게 개입하여 단군이래의 대토목공사를 훌륭하게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는 거창한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 헬리콥터로 혹은 지프를 타고 수없이 현장을 시찰하며 공정을 살피고 현장관계자와 인부들을 격려했다.” 추풍령에 세워진 준공기념탑 후면에는 이한림(李翰林) 당시 건설부장관의 글이 새겨져 있다.“이 고속도로는 朴대통령 각하의 역사적 영단과 직접 지휘아래 우리나라의 재원과 우리나라의 기술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힘으로 세계 고속도로 건설사상에 있어 가장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조국근대화의 목표를 향해 가는 우리들의 영광스러운 자랑이다.” 자연보호운동도 朴대통령이 현장에서 느낀 것을 국민운동으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사례다.77년 9월5일 朴대통령은 경북선산 고향에 있는 금오산도립공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폭포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그 산은 소년 박정희의 추억이 어린 곳이다.그런데 산꼭대기에서 폭포를 바라보니 경치는 일품이었으나 그 밑의 연못에는 밥찌꺼기.빈포장지.깡통.빈병등이 여기저기 마구 버려져 있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朴대통령은 아름다운 추억과 너무나 다른 불결한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朴대통령은“모두들 여기를 치우고 가자”고 했고 수행원 일행은 30~40분간 연못과 주변을 청소해 적잖은 쓰레기를 거뒀다.朴대통령은 걸어서 하산했는데 등산로 주변도 쓰레기와 폐기물로 더럽혀진 곳이 많았다.

朴대통령은 금오산뿐만 아니라 다른 국.공립공원도 같은 실정일 것이라고 판단했다.朴대통령은 며칠뒤인 77년 9월10일 월례경제동향보고를 받는 자리에서“자연보호운동을 범국민적 운동으로 전개하자”고 제창했던 것이다. 정리=김진 기자

◇이 회고록은 20회까지 연재될 예정입니다.그동안 연재된 회고록에 대한 독자의 의견을 환영합니다.팩스 02-751-5372.

<사진설명>

74년10월 박정희대통령이 전북의 현장에서 내장산개발계획에 대한 보고를

듣고 있다.朴대통령은 수시로 헬기와 자동차를 타고 현장으로

달려갔다.그의'현장통치'는 담당자들을 적당히 긴장시켜 국정의 효율성을

높였다고 김정렴씨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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